미술품 담보대출시대 열린다-하나은행,이달말 시행 예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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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미술품을 맡기고 돈을 빌려라’.미국을 비롯해 서구 선진국에서 이미 널리 시행되고 있는 ‘미술품 담보 대출’이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될 전망이다.17일 금융계와 미술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미술품 담보대출과 관련된 내부 작업을 최근 마무리지었으며,임원회의에서 이 안이 통과되는대로 화랑협회와 미술품 감정과 관련된 협약을 체결해 이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다.실시 시기는 오는 24일 화랑협회가 회장단 선거로 새로운 진용을 갖추고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는 이달말께부터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에선 하나은행의 미술품 담보대출이 성공을 거둘 경우 그간 내부적으로 이 서비스의 시행을 검토해 오던 다른 은행들도 대거 이 서비스를 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미술계는 미술시장의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조치라며 크게 반기고 있다.권상능 화랑협회 회장은 “감정등 몇가지 선결문제가 있지만 가뭄에 단비같은 희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화랑협회 회장선거에 출마한 노승진(노화랑대표·현 화랑협회 부회장)씨는 “작가는 물론 화랑이나 컬렉터등 모두에게 도움을 줘 미술시장 활성화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미술품 담보대출의 관철을 선거공약으로 내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대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하나은행 관계자는 “대출 서비스 대상자는 일단 하나은행 VIP고객(평잔기준 예금잔고 1억원 이상)으로 거래 지점장이 추천하는 사람에 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감정가의 몇 %까지 대출을 허용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시행 초기에는 보수적(50% 이내)으로 대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다른 조건은 하나은행의 여신 규정과 동일하다. 또한 담보에 수반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 제도의 시행초기 일반인보다는 자본력이 있는 대형 화랑등을 중심으로 고객층이 형성될 전망이다.

대출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미술품 1점당 진위감정료 25만원,시가감정료 35만원을 내야 하고 여기에 보관에 따르는 별도의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단 미술품 운반에 소요되는 비용은 은행측이 부담한다.

하나은행은 현재 서울청담동에 온도·통풍 시설이 완비된 미술품 보관 장소를 물색중이며 관련 업무를 맡아볼 전문 큐레이터도 채용할 계획이다.

문제점도 없지 않다.현재 법적으로 도품이나 모조품의 경우 선의취득(모르고 산 경우)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 잘못됐을 경우 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질만한 권위 있는 감정기관이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이와 관련한 화랑협회의 입장도 아직은 완전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

또한 대출금을 갚지 못했을 경우 이를 처분하기 위한 경매제도의 확충도 시급하다.이와 관련, 하나은행은 세계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소더비측과도 별도로 접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만약 이들이 시가감정과 배상책임 문제에 긍정적 반응을 보일 경우 미술품 담보 대출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재식·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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