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다니 레비 감독 '싸일런트 나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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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싸일런트 나잇'(스타맥스.영어 silent night의 표기로 사일런트 나이트가 더 정확하다.제작사의 이 무신경.왜'고요한 밤'이라고 제목을 달지 않나)은 스위스 태생의 57년생 감독과 60년대생 독일 배우들이 만든 영화로 90년

대 유럽영화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일견 즉흥적이고 난잡해보이는 현대 유럽 젊은이들의 사생활 속에서 피어나는 격렬하지만 진실된 남녀간 사랑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화면을 지배하는 어둡고 우울한 배경들은 남녀의 심각한 관계를 그대로 나타낸다.형식도 독특하다.상당수 장면이 전화 대화로 이뤄진다.남자로부터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는 여자의 이야기를 전화받는 여자의 대화로만 처리한 장 콕토의 모노드라

마'목소리'를 연상시킨다.다만 프랑스적인 열정과 심리적 역동성이 돋보이는 이 프랑스 극과는 달리'싸일런트 나잇'은 독일영화답게 차갑고도 진중하다는게 차이점.예술학교 학생 줄리아와 형사 크리스찬은 몇년째 동거중이다.하지만 줄리아가 바

텐더 프랑크의 격렬하고 도발적인 접근에 넘어가 이별을 준비하자,크리스찬은 둘이 들른 적 있는 파리의 호텔로 가 줄리아에게 전화로 마음을 되돌려 줄 것을 호소한다.이미 크리스찬과 이별을 결심하고 마지막 저녁을 준비하던 줄리아는 전화를

받고 고민하지만 집의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다른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결별 편지를 팩스로 보낸다.

크리스찬은 고민하던중 술집에서 만난 독일 가수를 데리고 와 줄리아에게 전화를 걸도록 부탁한다.그의 간곡한 호소에 줄리아의 마음은 다시 크리스찬에게 되돌아가고 이를 알게 된 프랑크는 크리스찬의 권총으로 삶을 끝낸다.

크리스마스 이브 8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뤄 제목이 고요한 밤(독일어 원제:Stille Nacht)이다.이는 세계는 크리스마스 이브답게 일견 평온하게 보이나 그 세계의 어느 한 쪽에선 이처럼 격렬한 사랑도 있음을 역설적으로 상

징하는 제목일 수도 있다.96년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했고 96년의 가장 독일적인 영화란 평을 이끌어냈다.

다니 레비 감독.'화니 핑크'의 여주인공 마리아 슈라더와 위르겐 푀겔.마크 슐리히터등 젊은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채인택 기자〉

<사진설명>

젊은 남녀의 격정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독일 영화'싸일런트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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