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 산책] 청룽(成龍)이 된 콩상(港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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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왕절개로 태어났습니다.
1954년 4월 7일의 일이었습니다.

전란으로 '팡(房)'씨 성을 숨기고
'찬(陳)'씨로 살아가던 아버지는 병원비 마련을 위해
이리저리 친구들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요리사, 어머니는 가정부로 일했지만
가난은 이처럼 출생 때부터 그를 옥죄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향내 나는 항구인 홍콩(香港)에서 태어났다는 뜻에서
그에겐 '콩상(港生)'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아버지는 새벽마다 그를 깨웠습니다.
쿵후(功夫) 수련이 목적이었지요.
아버지는 그가 쿵후를 배우면 인내와 용기,
그리고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가 일곱살 때 가족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호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콩상은 홍콩에 남겨졌습니다.
생존을 위해선 기술 습득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그를 홍콩에 있는 중국희극학원에 넣었습니다.

희극학원은 중국 전통의 경극(京劇)에 출연할 배우를 양성했습니다.
무술과 곡예, 노래, 연기 등을 가르쳤지요.
물론 실수할 경우엔 무서운 매질이 가해졌습니다.

그는 참았습니다.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열일곱 살 때 학원을 졸업해 사회에 나왔지만 막막했습니다.

경극은 이미 한물간 상태였습니다.
더욱이 희극학원에선 전혀 글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동안 부모가 있는 호주로 가 공사판을 전전했습니다.
'재키(Jackie)'라는 이름은 이때 얻었습니다.

그러나 남자 인생에 세 번 기회가 온다는 데
마침내 그에게도 기회는 찾아 왔습니다.

단역이건 스턴트맨이건 온몸을 던지는 그의 연기가
홍콩 영화계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물 두 살 때 '청룽(成龍)'이라는 예명을 얻었습니다.
코믹 쿵후영화 '취권(醉拳)' 등이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며 그는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는 언제나 몸으로 승부했습니다.
시계는 항상 15분 빠르게 맞춰 놓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업을 접은 그로선
남보다 빨리 움직이는 게 생존의 비법이라면 비법이었습니다.

위험한 촬영 장면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습니다.
발목이 부러지고, 칼에 팔을 베이기 일쑤였지요.
한쪽 귀는 청력을 잃었고, 코는 세 번이나 부러졌습니다.

두개골 일부가 깨져 생명이 위태로운 적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악착을 떤 끝에 그는 40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의 자선 활동이 존경스럽다'는 그는
최근 중국 양청완바오(羊城晩報)와의 인터뷰에서
돈을 '내 몸 밖의 물건'이라는 '신외지물(身外之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중국에선 부모들이 아들을 낳으면 훌륭한 인물이 돼라는 뜻에서
'왕즈청룽(望子成龍)'의 소원을 빌곤 합니다.

54년 전의 '콩상(港生)'이 이제 진정한 '청룽(成龍)'이 된 듯 합니다.
콩상, 아니 청룽의 아름다운 마음씨와 용기에 경의를 표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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