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게이트>김현철씨 얘기 왜 자꾸 나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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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한보게이트의 한 가운데로 등장했다.그가 야당의원을 고소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궁금증은 도대체 그가 왜 야당으로부터 이처럼 어마어마한 사건의 배후로 계속 거명되느냐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현철씨는 소산(小山)으로 불린다.대통령의 아호 거산(巨山)에 빗댄 것이다.대통령의 총애받는 아들이라는 차원에서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표현한 셈이다.

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4.11총선때 공천과정에서 그의'힘'을 느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현철씨 캠프에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인사들의 이름이 흘러나온 뒤 그들이 공천받은 사례가 적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철씨가 실제로 공천권을 행사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위치상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공천 대상자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또 정부의 장관급등 고위직 인사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발탁될 경우 그게 현철씨쪽에서 추천한 인사라는 소문이 빠짐없이 나돌았다.일부 현직 각료나 의원들도 현철씨에게 소위 줄을 대려고 아등바등 했다고 한다.심지어 그 주변인사들이 현철씨의 대학원 과정에도 함께 등록해 강의를 듣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대선주자들까지 너나 할 것없이 현철씨의 환심을 사려 했다.이른바 김심(金心),즉 金대통령의 후원을 얻기 위해서는 현철씨를 잡는 것이 관건이라고들 판단한 때문이었다.

이런 현상은 그의 인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권력 핵심부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한 결과라는 분석이다.여권 관계자들은“현철씨가 지난 87년부터 여론조사등으로 金대통령을 보좌해온 만큼 주요 정치적 사안에 대해 金대통령과 여권인사들에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金대통령이 인사문제에 관해 외부와 상의하지 않고 철저한 보안을 지키다 보니 인사에 대한 공식적인 채널이 무력화된 것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현철씨와 만난 사실이 있는 인사들이 그와의 친분을 과장하기도 했다.심지어“현철씨가 나를 밀고 있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관련된 소문이 무성해지고 그 영향이 정치권에서 관계와 재계로 번져나가는 풍문의 확대현상도 벌어진 것이 사실이다.

증권가에서는 현철씨가 기업비리 사건과 연루돼 있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대표적인 예가'3산1평'이다.현철씨가 이 4개 중소기업의 사장들과 친분관계를 맺으면서 막대한 대출을 해줬다는 루머다.그러나 이중 덕산과 효산구룹은 부도가 났다. 현철씨쪽은 이에 대해 한마디로“어이없다”고 분개하고 있다.소문은 무성한데 제시된 증거는 별로 없다.

현철씨는 최근 사석에서“모 여자 탤런트가 음주운전 사고를 냈을 때 옆자리에 30대 남자가 타고 있다고 하니까 그게 나라고 소문이 나더라”며 울분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진다.하도 어이없어 알아보니까 모 대기업회장의 동생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철씨는“내가 나온 경복고나 고려대출신 인사가 화제에 오르기만 하면 무조건 배후가 나라는 루머가 돈다”며 답답해했다.

모두가 헛소문이라면 현철씨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또 현철씨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거론하며 호가호위(弧假虎威)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문제는 현철씨 본인과 청와대측이 억울하다고 부인하지만 이런 얘기는 문민정부 초기부터 나왔다는데 있다.신한국당 한 의원은“사실이 아니었다면 이런 소문이 났을 때 왜 이런 말이 나도는가를 자성하고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신한 행동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가신(家臣)정치''밀실정치'로 불려온 한국정치에서 리더십의 행사나 정책결정 과정은 대부분 비공개적인 방법으로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까 권력의 제도권 밖에 가려진 현철씨 같은 사람들이 더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이에따라 갖가지 소문이 끊일 날이 없는 후진정치가 위세를 떨쳐온 것이 우리의 지나온 정치사다.곧 있을 검찰조사가 현철씨를 둘러싼 소문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지,아니면 또다른 소문의 증폭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보이지 않는 큰손'이냐 아니면'소문의 희생양'이냐의 여부이나 검찰조사에서 후자쪽으로 매듭되더라도 그걸 믿을 국민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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