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實심화시킬 대출독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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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승수(韓昇洙)경제부총리가 금융권별 협회장과 은행장들이 모인자리에서 금융기관의 자세가 경직돼 한보부도로 인한 자금경색이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다.중소기업의 연쇄부도는 곤란하니 대출을늘리라는 얘기다. 이같은 정부 자세는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을 정부가 독려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문제가 있다.물론 연쇄부도가 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그러나 정부가 한보부도를 계기로 금융제도와 관행의 대폭 개선을 촉구하면서 장래가 불투명한 한보에 돈을 대주라든지,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한보부도사태로 인한 파장을 빨리,그리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시장에 맡기는 것뿐이다.물론 단기적으로 고통이 뒤따를 수있다.그러나 원칙을 세우면 그 원칙 을 지켜야 시장의 신용질서가 잡히는 법이다. 현재의 자금경색은 단기적으로 신용에 기초한 경제흐름이 끊긴 것 때문이다.따라서 돈을 인위적으로 풀어 정부가 나서 이리저리막으려 하지 말고 시장에서의 신용이 저절로 회복되는 것을 도와주는게 올바른 방법이다.일본이 금융사고를 처리하 는 방법과 영국및 미국의 방법을 비교해 보면 시장에 의존하는 후자의 경우가나중에 가서 훨씬 효율적이었음이 밝혀졌다. 은행의 부실여신은 정부집계로는 2조~3조원에 불과하지만 엄격한 국제기준으로는 13조~15조원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한보사건을 계기로 은행의 부실여신을 재정으로 해결하고 책임경영 주체를 확립해 차후 부실여신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이와 관련해 한은(韓銀)이 금융개혁위원회에 보고한 금융개혁안에서 산업자본의 경영참여를 허용하고 금융지주회사의 설립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주목할만 하다. 과거 잘못된 은행경영의 부담을 국민이 진다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은행의 경쟁력기반을 마련해주고 주인을 찾아주기 전에는 부실여신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고 외국금융기관과의 경쟁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슨 다른 대안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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