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 뻔한 배, 술로 태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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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배로 만든 소주·막걸리가 나온다. 올해 배는 작황이 좋아 가격이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치면서 상당량이 폐기 처분될 상황이었다. 이를 국순당이 사들여 국내 최초로 배소주와 배막걸리를 개발해 낸 것. 국순당은 이달 중순쯤 ‘배로 막걸리’ ‘배로 증류주’를 시판할 계획이다.

이 회사가 배를 이용한 전통주를 제품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10월. 정부가 배 생산농가를 돕기 위해 배 1만t을 사들여 폐기하기로 결정할 즈음이었다. 배상면 국순당 회장은 청와대와 농림수산식품부에 “남아도는 배로 전통주를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편지를 보냈다. 고봉환 국순당 홍보팀장은 “배술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지만 재료값이 비싸 개발을 보류하려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배 회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경기도 평택과 충남 천안 지역의 배 생산농가와 국순당을 연결해줬다. 농민들 역시 “땅에 묻을 바에야 생산원가라도 받자”며 정부 수매가(1㎏당 약 440원)보다 싸게 배를 넘겼다. 국순당이 사들인 배는 모두 200t. 술 가격은 400mL기준으로 배로 막걸리가 2000원, 배로 증류주는 8000원 정도다. 고 팀장은 “막걸리는 팔아도 손해 보는 수준이고, 증류주는 생산원가에 맞춘 가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국순당은 배술 생산을 접지 않을 계획이다. 배중호 사장은 “농가가 어려울 때 돕는 것은 전통주를 만드는 회사의 책임”이라며 “장기적으로 계약재배를 통해 일정한 가격에 배를 공급받고, 술 가격도 농가·회사 모두가 손해 보지 않는 수준으로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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