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의 책vs책] 시기심의 얼굴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기심
롤프 하우블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 리브르, 416쪽, 1만6500원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
앤·배리 율라노프 지음, 이재훈 옮김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48쪽, 1만원

연전에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잠시 어학원에 다닌 일이 있는데 그때 오십대 여선생이 이런 주의를 주는 것을 들었다. “동양 학생들은 ‘네가 부러워’나 ‘질투하니?’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매우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실제로 동서양 여학생은 어떤 행동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누군가 멋진 옷을 입고 오면 서양 여학생들은 ‘나이스 원피스!’라고 말하고, ‘생큐’라고 답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동양 여학생들은 ‘어디서 샀니?’‘얼마짜리니?’‘한 번 입어봐도 되니?’라는 물음이 이어지고 기어이 남의 카디건을 벗겨 걸쳐봐야만 그 과정이 끝났다.

칭찬이나 부러움은 기본적으로 시기심의 얼굴이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 넘어진 자 밟아주고 절벽에서 밀어주자 등 우리가 아무 자의식 없이 사용하는 이런 유의 속담이나 농담 배면에 있는 감정도 시기심이다. 우리는 보통 질투와 시기심을 구분 없이 섞어 쓰는데 두 감정은 엄격히 구분된다. 질투는 삼각관계에서 발생하는 세 사람 사이의 감정이어서 연인을 두고 연적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질투의 심리적 배경에는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반면 시기심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며, 상대방이 가진 것이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시기심을 촉발하는 대상은 타인이 소유한 물질뿐 아니라 미모·재능·명예·행복 등 다양하다.

『시기심』은 독일의 심리학 교수가 쓴 책이고 『신데렐라와 그 자매들』은 미국의 융 학파 정신분석의 부부가 쓴 책으로 ‘시기심’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질투의 심리를 다룬 책으로는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가 있다). 두 책 모두 시기심의 심리적 근원과 발현 형태를 탐구하지만 앞의 책은 시기하는 사람의 심리를 중심으로, 뒤의 책은 시기당하는 사람의 심리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시기하는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눈앞에 보이는 타인의 소유물에 대해 시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감정은 실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 발현되며 유년기에 형성되는 것이라 한다. 특히 시기심은 어머니의 수유 습관에 의해서 형성되는데, 생존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누워 젖을 기다리기만 하는 아기는 어머니가 가슴에 불룩하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박탈감과 분노를 간직한다는 것이다. 유아기의 여아는 페니스에 대해, 남아는 어머니의 질에 대해서도 선망을 품는다. 이렇게 형성된 시기심은 사회적 비교를 통해 강화되며, 내면에 압도적인 결핍감과 경쟁심을 품게 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냉혹한 심리 상태에 처하게 한다. 시기심이 가장 격렬하게 작동할 때는 자기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살해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소극적으로 작동할 때는 악성 루머, 악의에 찬 농담, 구매 중독, 집단 따돌림의 형태로 나타난다.

반면, 시기당하는 사람은 신데렐라처럼 오직 선함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기의 대상이 된다. 시기당하는 사람 역시 고통받았으며 그가 가진 것을 얻기 위해 힘들게 노력했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은 채 시기심의 대상인 하나의 사물로 치환된다. 그리하여 시기당하는 사람은 자칫 죄책감을 느끼기 쉽고, 시기심을 피해 관계를 철수하게 되고, 자신이 가진 선을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때 시기당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시기받는 고통을 인정하는 것, 그럼에도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는 것, 자신이 가진 선을 끝까지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귀족에게 요구되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제도화된 기부 문화 같은 것은 시기당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생존 방식일 것이다.

시기심은 분노, 나르시시즘과 함께 인간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감정이라 한다. 서양 문화에서는 시기심을 워낙 엄격하게 다룬다. 성경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대죄에도 시기심이 포함되어 있고, 십계명에도 ‘너는 이웃의 집을 달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시기심을 경계하고 있다. 만약 서양인 앞에서 ‘아이 엔비 유’라고 말하면 ‘나 살인했어요’나 ‘나 이웃집 남편과 간통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맞먹는 정서적 충격 효과를 낼지도 모른다.

김형경 (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