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포커스>한보부도와 水西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6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수서사건(91년)과 한보부도사건(97년)을 대하는 시중의 반응은 대체로.마치 재방송되는 구식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한보와 정태수(鄭泰守)총회장,그리고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수있는 정치인들이 개입돼 있고,.검은 돈'과.특혜'.의혹'이 주제라는 점에서 두 사건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두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허탈감도 비슷하다 . 한보부도는 과연 수서사건의 재판(再版)일까.결코 그렇지 않다. 91년.한국판 리크루트스캔들'이라 불릴 정도로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수서사건은 한보가 서울 수서지역 택지개발예정지구내의녹지 3만5천여평을 조합주택 부지로 특혜분양받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청와대비서관과 5명의 국회의원등이 줄줄이 교도소로 들어가면서 매듭지어진 이 사건은 우리나라 정.재계의 비리 커넥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사건뒤 鄭회장은 경영일선으로 복귀했고 국민들도 언제 그랬느냐는듯 정경유착의 어두컴컴한 뒷구석을 더이상 문제삼지 않았다.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3만5천여평의 녹지가 사라져 아파트단지로 변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한보부도사건은 국가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메가톤급.경제사건'이라는 점에서 수서사건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기업이 과다한 대출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금융사고'로 간단히 설명하기에는 치러야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 당장 수천 하청업체들이 연쇄부도 위기에 몰리고,한국기업의신용도도 떨어져 해외자금 조달이 쉽지 않게 되는등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과투자 또는 투자비 유용에 따른 재원낭비도 보통 일이 아니다.국민들 개개인이 더이상.관객'이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두 사건의 이같은 본질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만일 구조적인 비리 사슬을 뜯어고치지 않고 개인비리에 대한 단죄에서 이번 사건을 끝낸다면 정말로 6년전의 수서사건을 다시 보는 결과밖에 얻지 못 할 것이다.홍병기 경제2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