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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만 늘리는 진료는 환자 존엄성 훼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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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존엄사 법제화 운동을 펼쳐온 최철주(66·사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장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내에도 ‘존엄사법’이 만들어져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전 실장은 2003년 자궁암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딸을 지켜본 뒤 호스피스 활성화 운동을 벌여왔다. 또 ‘웰다잉(well-dying)’의 의미를 알리며 존엄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해피…엔딩, 우리는 행복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를 저술해 국내외 현실을 알리기도 했다.

-이번 판결을 어떻게 평가하나.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한다. 우리에게는 존엄하게 살 권리와 함께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그동안 수명 연장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과잉진료로 환자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일이 많았다. 유교적 관습 때문에 국내에선 죽음에 대한 논의가 더뎠다. 의사들도 ‘치료(cure)’만 알고 ‘돌보는 것(care)’은 알지 못했다. 이런 기류를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논의가 필요한가.

“존엄사를 인정하면 의사들이 환자를 대강 치료할 것이라는 우려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존엄사 제도가 생기면 의료진의 책무는 오히려 강화될 수밖에 없다. 말기 환자에 대한 모든 진료가 가족에게 공개되고, 병원 내 의료윤리위원회가 치료의 성실성을 감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스피스에 대한 의료수가를 인정해 줘 큰 부담 없이 인생의 마지막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

-이번 판결은 가족이 아닌 환자 본인의 의사만을 인정했는데.

“이번 판결 전까지 국내 존엄사 논의에서 환자 본인의 의지는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해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공표했다. 환자가 ‘생전 유언’을 통해 죽음의 방식에 대해 밝혔을 경우 병원과 의사는 이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가족에 의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도 인정했다. 이번 판결 역시 ‘자기운명결정권’의 근거로 가족들이 전한 평소 환자의 언행을 들었다. 국내에서도 건강할 때 미리 죽음의 방식에 대해 의사를 표현하는 생전 유언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존엄사 법제화 움직임은 어떤 게 있나.

“국회에서 최근 존엄사 관련 토론회를 수차례 열고 있다. 한나라당 김충환, 민주당 전현희 의원 등이 호스피스나 존엄사 관련 법안을 추진 중이다.”

-죽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뭔가.

“삶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다. ‘웰빙(Well-being)’ 속에는 웰다잉도 들어 있다. 외국에선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배운다. 죽음을 바라보게 되면 올바른 삶의 선택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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