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안 보이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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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8강전>
○·야마시타 9단(일본) ●·쿵 제 7단(중국)

제4보(42∼53)=야마시타 9단의 눈에도 백△의 비효율이 계속 거슬린다. 힘차게 밀었으나 한 집도 안 되는 곳. 더구나 상대가 손을 빼도 별 볼일 없다니!

보통의 경우 머리를 연타당하면 끔찍하게 아픈 법. 하지만 이 형태는 ‘참고도 1’ 백1, 3으로 두들겨도 거의 아픔을 주지 못한다. 12까지 넘어가면 자칫 집을 지어줬다는 비난마저 들을 수 있다.

야마시타는 우울하게 42로 웅크리고 있다. 백△ 때문에 공격에 나서야 할 우변이 거꾸로 쫓기고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그러나 이 42도 모진 비난을 듣게 된다. 박영훈 9단이 “말도 안 된다”며 제시한 그림이 ‘참고도 2’다. 백1로 한 칸 뛴 다음 3으로 걸쳐가니 실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시원해 보인다. 이런 날이 있다. 일본 바둑이 아무리 죽었다지만 일본 1위 야마시타가 이렇게 약한 바둑은 아니다. 이런 날이, 영 안 보이는 날이 있는 것이다. 쿵제 7단이 43, 45로 신바람을 내고 있다. 거꾸로 쫓으며 두는 족족 집이 되니 참 편하다. 50도 된통 욕을 먹었다.

“좌우간 밖으로(A) 나와야 한다. 맛 나쁘게 이렇게 웅크려서는 앉아 죽는 일뿐이다.”(조훈현 9단)

빙글빙글 볼일 다 본 쿵제가 이제야 53에 지킨다. 백△의 체면은 더욱 말이 아니게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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