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한보사태 전체를 보는 접근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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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보(韓寶)사태의 관련기사를 읽다가 보니 문득 죄(罪)라는 글자의 어원(語源)이 생각난다.모두 죄가 없다는 듯이 나오는 폼이 그야말로 백성을 우습게 여기는 형국이다. 죄라는 한자는 그물을 뜻하는 망(=) 밑에 非(아닐 비)자를받쳐서 만든 글자다.非라는 글자는 고기의 지느러미 또는 새의 날갯죽지 모양을 본뜬 것이다.따라서 죄(罪)라는 글자는 고기 또는 새(非)를 잡는데 쓰는 그물()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글자의 성격은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잡는다는 것을 뜻하는것이긴 하지만 큰새나 큰고기는 잡을 수 없다는 함의(含意)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어지간히 크고 튼튼한 그물이 아니고서는 큰고기나 큰새를 잡을 수 없다는 이야 기다. 그런데 죄(罪)라는 글자의 본래 글자는 (죄)였다.라는 글자는 사람을 정면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인 自(자)와 옛날 노예 또는 죄인의 이마에 문신을 할 때 쓰던 침의 모양을 본뜬 글자인 辛(신)을 합쳐서 만든 것이다.이 글자는 죄인의 이마에문신한 참담한 모습을 상형화한 것인데 글자꼴이 皇(임금 황)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진시황(秦始皇)에 의해 폐기됐다고 한다.진시황은 罪자로 그 글자를 대치했고,그 뒤에는 거의 모든 자전(字典)에서 본래의 죄라는 글자()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런 글자에 얽힌 곡절은 큰 죄를 짓는 황제일수록 글자에까지도 횡포를 부린다는 것을 말해주는 셈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지은 큰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미화(美化)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한보사태를 이른바 관(觀)해 보면 무엇이 진실(眞實)인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관(觀)한다는 것은 동양적 사유법(東洋的 思惟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전체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그림이나어떤 현상을 국지적(局地的)으로,또는 3단논법식으로 파고들어 가지고는 전체의 윤곽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관(觀)을 하는 기초에 깔려 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진실을 숨기려는 입장에 선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지화 또는 미시화(微視化)가 첩경일 터이다.따라서 한보사태는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이런 측면에서 지난주 중앙일보 가 보여준 일련의 한보관련 보도와 특집은 커다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특히 6공화국 시절의 수서(水西)사건과 이번 사태를 대비한 특집은 이른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고,진실을 밝히는 해법이 무엇인가를 시사해 주고도 남는다. 수서사건을 돌이켜볼때 두가지 점이 크게 부각된다.하나는 사건의 처리가 철저히 각본(脚本)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고,또 하나는 최고 권력자와 비자금의 연관성이 밝혀진 것은 정권이 바뀐 훨씬 뒤의 일이라는 사실이다.이런 사실들은 어떤 의미에서 신문이 무엇을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도 할수 있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수서사건은 이른바 언론이 관계당국에 의해철저히 농락당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때 당국의 수사나 발표에 나타난 문제들을 철저히 취재하고 파고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사실 당국에 의한 수사 나 발표는 거의 예외없이 어떤 한계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아 틀림없다.그런데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언론은 비록 반독재투쟁을 해오긴 했지만 기사 취재면에서 발표에 의존하는 수유(授乳)체제에 길들여진 흔적이 남아있는 것 또한 사실이 다.그런 체질에서 완전히벗어나지 않는한 언론이 올바른 자세를 갖기가 어려우리라는 것은구태여 설명할 나위도 없을줄 안다. 만약 수서사건때.워터게이트'를 취재한 워싱턴 포스트와 같은 신문이 있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계와 정치.사회의 상황은훨씬 달라졌을 것이다.그러나 수서사건의 교훈은 이제 한국의 언론이 해야 할 과제와 방향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일깨워 주고 있는 셈이다.이번의 한보사태는 결코 수서사건의 재판(再版)이 되거나 되도록 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책의 책임도 추궁 물론 한보사태를 수서사건과 반드시 같은 성격의 것이라고 예단할 수도 없고,예단해선 안된다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한보사태는 수서사건보다 금액이나스케일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폭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될 것 이다.수서사건에서 보여준 정태수(鄭泰守)씨의 진면모는.입'이 무겁다는 점이었다.이 점이 바로 그의 로비력과 함께 오늘의 한보로 비약(?)케 한 기초를 이룬 것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비록 스케일이나 금액이 크면 죄를 다스리는 그물을 벗어나는 것이 죄(罪)라는 글자의 함의라 할지라도,그것을 그대로 현재화시킬 이유는 조금도 없다.더군다나 한보사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문제는 법률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이른바 정책의 책임문제와 도덕성의 문제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견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본사 고문) 이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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