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언론자유 없는 '자유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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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7년 전 중국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홍콩에는 아직도 중국에 비판적인 언론이 적지 않다. 권위지 신보(信報)와 대중지 빈과(果)일보가 대표적이다.

방송계에선 상태(商台)라디오가 압권이다. 특히 '풍파 속의 찻잔'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은 구수한 입담으로 정.재계의 '중국 눈치보기'를 아프게 꼬집는다. 출근 길에 택시를 타면 십중팔구 이 프로그램을 들어야 한다. 이들 언론은 보안법 입법 반대와 행정수반 직선 요구에 앞장서왔다.

그런데 요즘 '풍파 속의 찻잔'이 말 그대로 풍파를 만났다. 이 프로그램을 맡은 지 일주일밖에 안된 앨런 리(64.李鵬飛)가 19일 돌연 "좋은 친구들을 공개 비평하고 싶지 않다"며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홍콩 정계에서 활약하면서 쓴 소리와 입바른 소리를 서슴지 않았던 강직한 인물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 홍콩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전인대 대표직도 사임했다.

지난 3월엔 10년 가까이 이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60대의 앨버트 정(鄭經翰)이 "정치적인 압력이 나를 질식하게 만든다"며 아예 홍콩을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앨버트는 98년부터 여러 차례 테러를 당했다. 그의 뒤를 이은 두번째 앵커 역시 13일 만에 "심신이 피곤해 쉬고 싶다"며 물러났었다.

무엇이 이들을 떠나게 만드는 걸까. 주변 인물들은 "정치적인 압력과 친중계 조직의 협박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심지어 이들의 가족까지 협박받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홍콩 언론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간섭이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간섭을 넘어 거의 탄압 수준이다. 친중계 일간지 문회보(文匯報)는 매국노나 정치 모리배라는 막말까지 써가며 민주파 인사들을 공격하고 있다. 오는 9월의 입법회 선거(전체 60석 중 30석만 직선)를 앞두고 민주 세력과 언론을 길들이려는 의도다. 홍콩은 국제자유도시이지만 언론계는'비(非)자유'를 향해 거꾸로 도는 '중국제 시계 바늘'만 쳐다보고 있는 신세인 것 같다.

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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