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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叟)

중앙일보

입력

‐매주 금․토․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광통교와 장통교에서

“이곳 장통교는 원래 장통방에 있던 다리라오. 조선후기 때 야담집들을 보면 숙종이 역대 임금의 영정을 봉안한 영희전에 참배를 하고 수표교를 지나 장통교가 있던 장통방의 한 여염집에서 한 아리따운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만 한눈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지 뭐요. 그래서 숙종은 이 여인네를 궁으로 불러들였는데, 이 여인이 바로 사극의 단골 소재가 되는 장희빈이지요.”


청계천을 거닐고 있는데 걸쭉한 목소리가 발길을 붙든다. 장통교에 이어 조선시대 태조와 태종, 신덕왕후 간의 왕위를 둘러싼 비극적 이야기를 풀어내는 목소리는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처절한 음색을 띠면서 리듬을 탄다. 목소리만으로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를 드라마로 만드는 이야기꾼 전기수. 그가 광통교의 거꾸로 놓인 신장석의 유래를 풀어내자, 그저 단순히 모양으로만 여겨지던 유적이 ‘역사’로 되살아난다.

“계비인 신덕왕후를 너무 사랑했던 태조 이성계는 왕후가 죽은 후에도 궁궐에서 보이는 정동에 능을 만들고 그녀를 기리기 위해 지은 흥천사의 종소리를 듣고서야 수라를 들 정도였다오. 그런데 신덕왕후에 의해 왕권 승계에서 밀려났던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이 된 후, 태조 사후에 정동에 있던 신덕왕후의 묘를 정릉으로 이장하고 남은 석물로 다리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광통교. 특히 광통교에 있는 12개의 신장석 중에는 거꾸로 놓여 있는 것들이 있는데 태종 이방원이 신덕황후를 미워해서 많은 사람들이 짓밟고 다니도록 거꾸로 놓았다는.......”

전기수는 임진왜란을 전후해 중국으로부터 ‘삼국지(三國志)’, ‘수호지(水滸誌)’ 등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소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자 서울거리에 생겨난, 전문 이야기책 강독사를 말한다. 서울시설공단은 역사 속 청계천을 재조명하면서 방문객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매주 금, 토, 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광통교와 장통교에 전기수 6명을 배치했다. 20세기 들어 사라진 역사 속 직업이, 2008년 10월 서울 한복판에서 되살아 난 것.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전기수는 청계천에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적들과 조선 태조부터 정조대까지 역사 속에 서려있는 이야기를 구성진 입담으로 풀어내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특히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모습은 그 자체로도 외국인에게 특색 있는 볼거리가 돼 주고 있다.
이정웅 전기수(68)는 “청계천에 와 물만 보고 가지 말고 이제는 자녀들 손을 잡고 전기수 얘기를 들으며 역사를 호흡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일단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인 11월까지만 운영된다. 하지만 내년 봄부터는 청계광장과 빨래터 등지에까지 확대해 전기수를 배치할 예정이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영어, 일어, 중국어 통역 서비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자료, 사진 제공=서울시설공단
워크홀릭 담당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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