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함’은 A씨(32·여)의 트레이드마크다. 자로 잰듯 반듯하게 정돈한 책과 책상, 미끌어질 듯 반질반질한 바닥. 하지만 그녀의 삶은 고달프다. 집안을 아무리 깨끗이 쓸고 닦아도 먼지가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청소하는 데만 서너 시간은 소비하는 것 같다. 결혼 후의 삶은 더 힘들어 졌다. 남편 때문이다. 귀가 후 곧바로 소파에 털썩 앉는가 하면, 샤워도 안 하고 여기저기를 만지고 다니다. 괴로운 건 A씨 남편도 덜하지 않다. 지친 몸으로 귀가한 날, 질색한 얼굴로 ‘샤워해라’‘손 씻어라’는 식의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대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내가 지겹다. A씨는 강박증 환자의 어려운 일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본인도 생각과 행동이 지나친 건 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억지로 자제하다 보면 참을수 없을 만큼 불안감이 밀려와 결국엔 하고야 만다.
강박증 평생 유병률은 2~3%다. 하지만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크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 청결에 관대한 중화문화권에 속하는 대만은 유병률이 0.7%지만 억압적인 문화권에 놓인 중동에서는 3~4%나 된다”며 “강박 성향이 있어도 발병 여부는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원인은 뇌기능 이상=강박증은 뇌의 신경회로 이상으로 자신의 생각이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는 병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이치에 안 맞는 줄 인식하고, 또 그런다고 즐거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단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이 들면 기어코 반복해야만 긴장·불편함·공포·불안 등이 줄어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다.
물론 이런 성향이 반드시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반복 확인을 통해 실수를 안 하는 정확한 성격이 일터에선 높은 업무 성취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증상이 경미할 때 인정되며, 하루 한 시간 이상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성격 탓’으로 돌리고 치료를 안 받는 환자가 더 많아 국내에만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약물과 인지행동 치료 병행=치료는 약물치료를 통해 뇌기능 이상을 정상화하면서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해야 효과가 높다.
인지행동 치료는 강박 증상을 일시적으로 악화시킨 뒤 이를 참는 일을 반복하는 것. 예컨대 화장실에 다녀온 후 손을 안 씻고 견디는 일을 반복하는 식이다. 따라서 상태가 중등도 이상 되는 환자는 치료 자체로 불안이 증폭돼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약물치료로 일단은 뇌기능 이상을 안정화 시킨 뒤 인지행동 치료를 시작한다.
약물은 우울증 치료제로도 사용되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SSRI)가 사용된다. 단 치료기간과 용량은 우울증과 다르다. 권 교수는 “강박증 환자는 우울증 환자에게 사용되는 용량의 2~4배를 8~12주 사용해야 효과를 본다”고 강조한다. 참고로 우울증은 짧게는 2주일, 길어도 6주만 복용하면 일단 증상이 호전된다. 증상이 호전된 뒤 2년 이상 지속 치료를 받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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