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의 중국이야기] 중독(中毒) -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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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목불인(麻木不仁)이란 말이 있다. 감각이 마비돼 외부 자극에 반응이 더디거나, 외부 상황에 관심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싼루 사건 이후 공무원의 근무 태도를 질책하며 던진 말이다. 관리들이 자기 이익만 살필 뿐 인민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마목불인'한다는 비판이다.

마목불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독 바늘' 사건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정부가 공인한 제약회사, 정부 산하의 병원 등 이른바 '명품'과 '공인 제품'들이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이다.

최근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의 성(省)부녀아동보건의원에 입원한 12명의 유아 환자가 포도당액을 주사 맞은 뒤 발작을 일으켰다. 고열에 오한이 번갈아 엄습했다.
이 포도당 주사액은 저장(浙江)성 쥐넝야오스(巨能藥斯) 약업공사 제품이다. 이 회사는 성이 지정한 모범 제약회사다. 요컨대 모범제약 회사가 공급한 주사액을, 성 정부가 세운 병원에서 맞은 뒤 발작을 일으켰다는 얘기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법 하다.

뿐만 아니다. 위난(雲南)성 남부 훙허저우(紅河州)의 제4 인민의원에서 10명의 환자가 츠우자(刺五加) 주사액을 맞은 뒤 오한, 구토, 메스꺼림, 혼미, 혈압강하 등의 발작 현상을 보였다. 그 결과 순화, 소화, 비뇨기, 근육, 신경기관에 심한 손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세 사람은 기관 쇠약으로 사망했고, 다른 세 사람은 중태다. 주사액은 허이룽장(黑龍江)성 국유기업인 다산(達山)제약창이 만든 제품이다. 역시 유명 제약사가 만든 약을, 정부 보증 병원에다 맞다 횡액을 당한 경우다.

츠우자은 풍습성 관절염을 치료하는 중약(中藥)이다. '츠우자 주사액 사건 조사 소조'를 맡은 쿤밍(昆明)의학원 제2 부속병원의 쑨웨민(孫躍民) 박사는 "불합격된 주사액이 일으킨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난창대 제2 부속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혈액분석기를 사용해 혈액의 성분을 조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던진 사건은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에서 발생했다. 난창대학 제2 부속병원은 최근 환자들에게 면역구단백(PH4)을 주사했다. 결과는 6명 사망이었다. 주사액은 장시 보야(博雅)생물제약주식회사 제품이었다. 이 회사는 대형 국유기업으로, 장시서 유일의 '국가 인정 혈액제품생산 공장'이다. 국가급 첨단기술기업, 장시성 최초의 첨단산업으로 선정된 기업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제조한 혈액제품은 1998년 '중국 약품 GMP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난창대 제2 부속병원도 전통에 빛나는 병원이다. 전문의 숫자도 장시성에서 가장 많다. 전신은 중정(中正)대학 부속병원으로, 1920년 대 설립됐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면역구단백은 중국약품생물제품검역소로부터 '생물제품 합격증'을 받은 제품이다.

허나 이 보다 더 기막힌 일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후 국무원 약품감독국과 장시성 정부가 개입하자 난창 대학과 지방 정부가 '말 막기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이들은 유족들을 만나 20만 위안(약 4000만 원)의 배상금을 지불할테니 더 이상 잘못을 추궁하거나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할 것을 종용했다. 더구나 병원 측의 서면 동의가 없는 한 합의서 내용을 외부로 공개해선 안되고, 언론과도 접촉할 수 없다는 내용도 추가시켰다. 이같은 사실을 일부 유족이 배상금 수령과 합의서 서명을 거부한 뒤 이같은 내용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드러났다.

이 정도면 마목불인 정도가 아니다. 그나마 '살인멸구'까지 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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