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퇴임 전 북핵 검증 타결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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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리마에서 만난 한국·미국·일본의 정상이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다음 달 초 개최에 합의했다. 엄밀히 말하면 3국만의 합의로 6자회담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참가국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입장이 관건이다. 하지만 전후 사정으로 보면 참가국들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대체로 12월 초 재개 쪽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퇴임 전 6자회담을 열고 핵심 현안인 검증 문제를 타결 지으려는 의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지난해 1월 북·미 베를린 협의 이래 핵시설 폐쇄(셧다운)-불능화-핵 폐기란 단계적 접근법으로 북한과의 협상 틀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 북한으로부터 핵 신고서를 받아냈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해 줬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영변 핵시설 불능화도 완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검증 문제란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상태다. 더구나 이라크 문제 등 외교 현안에서 점수를 따지 못한 부시 대통령으로선 북한 핵 문제에서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가 절실하다.

부시 대통령은 한·미·일 3국 회담에 앞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먼저 만났다. 이 자리에서 후 주석도 12월 개최에 동의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달 초 이근 북한 외무성 국장의 뉴욕 방문 때 이뤄진 북·미 실무 협의 결과에 대한 평양 당국의 입장이 최근 미국에 전달됐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이 같은 상황 속에 부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연쇄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일정이 거론됐다. 남은 문제는 6자회담에서 북·미 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핵시설 시료 채취(샘플링) 여부에 대한 사전 교감이다. 북한은 12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검증 방법은 현장 방문, 문건 확인, 기술자들과의 인터뷰로 한정된다”며 시료 채취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지난달 초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협상 때 시료 채취에 관한 구두합의가 있었다는 미국 측 주장도 부인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한국·일본 등은 “북한의 핵 활동 규명과 신고서의 진실성 검증에 핵시설 현장에서의 시료 채취(샘플링)는 필수적”이란 원칙에 변함이 없다. 다만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합의문에서의 용어 사용이나 실시 시기 등 각론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북·미가 시료 채취에 관한 절충안에 합의해야만 6자회담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에만 합의하고 견해차가 있는 세부사항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는 임기응변식 해법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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