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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붕괴,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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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에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있다면 일본엔 ‘기타구니 노 하루(北國の春)’가 있다. 센 마사오(千昌夫·61)가 부른 노래다. 그는 가수왕보다 ‘부동산왕’으로 더 유명하다. 1990년 센은 3조원 규모의 빌딩과 호텔을 거느렸다. 그의 운명은 데뷔곡이 히트를 한 66년부터 달라졌다. 인세 4억원으로 센다이 부근의 임야 5만㎡를 매입한 것. 도후쿠 신칸센이 지나면서 땅값은 순식간에 10배나 뛰었다. 그는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 쇼핑에 나섰다.

센은 롤스로이스 리무진만 고집했다. 밤에는 일류 요정에서 재계 거물과 어울렸다. 미국 출신 미모의 탤런트인 존 세퍼드와 이혼하면서 엄청난 위자료를 건넸다. 천(千) 대신 ‘오쿠(億) 마사오’란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이 무너지면서 사단이 났다. 일 년 뒤인 91년 그는 1조원대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는 요즘 악단 대신 노래방 기계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남은 빚을 갚기 위해서다.

센의 학력은 고교 중퇴가 전부다. 옛 장기신용은행이 뭉텅이 돈을 빌려준 것은 역설적이다. 이 은행은 도쿄대·게이오대·와세다대 출신이 아니면 엄두도 못 냈던 꿈의 직장. 장기 설비자금을 저리로 빌려주는 이 은행에는 대기업 오너까지 고개를 숙였다. 은행은 갑의 위치를 즐겼다. 하지만 80년부터 탈이 났다. 수출로 돈이 넉넉해진 기업들이 대출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엘리트 행원들은 앉아서 장사하는 맛을 잊지 못했다. 결국 손쉬운 부동산 대출로 눈길을 돌렸다. 이 은행이 센에게 물린 돈만 3조원. 수십조원의 공적 자금을 받았지만 파산보호 신청을 비켜가지 못했다.

요즘 국내 은행단이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대주단(채권단) 자율협정 신청을 받고 있다. 정부는 연일 부동산 안정 대책을 내놓고 있다. 거품 붕괴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93년 일본 경제백서는 이렇게 경고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는 경제의 대원칙이 확인되었다…거품은 한번 발생하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판(版) 센과 장기신용은행이 쏟아질지 걱정이다. 지난해 환갑을 맞은 센은 이를 자축하는 ‘간레키 이와이 우타’란 새 노래를 내놓았다. “~오늘만은 축하하고 싶다~”며 반복되는 후렴에는 곡절 많은 인생이 녹아 있다. 오랜만에 TV에 등장한 센의 이마에 주름이 깊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