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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사상 이어가는 외유내강의 賢哲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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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 31면

나는 연초에 박재순 목사의 씨알사상 강좌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1년 내내 주말이면 명동성당에서 그의 드높은 정신 세계와 만나는 기쁨이 있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대로 익히는 일이 아니 또한 기쁜가)”라는 공자의 말씀을 실감했다.

내가 본 박재순 목사

철학은 어렵기만 한 서구의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씨알사상을 공부하면서 우리 조국에 그토록 위대한 사상가들이 있었다는 것과 그들의 사상이 서구철학들을 오히려 앞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박목사의 강의는 매번 ‘說乎’의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게 했다.

큰 기쁨 속에서 나는 반성했다. 학생 때 공부를 이렇게 성실하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공부하면서 진정으로 그윽한 기쁨을 누린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박 목사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게 많다. 무엇보다 박 목사는 나를 포함해 ‘나이든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기쁨을 안겨주는 고마운 안내자라는 사실을 외치고 싶다.

박재순 목사는 한결 같은 인품과 깊고도 뜨거운 학문의 경지로 주변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외유내강의 현철(賢哲)이다. 본인은 이런 평가에 대해서 불편해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을 피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박 목사는 유영모ㆍ함석헌 두 분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을 가진 연구자다. 다석 유영모와 바보새 함석헌 선생은 사제 간이다. 함 선생은 다석 선생을 존경하고 따른 ‘큰 제자’였다. 그런데 박 목사는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함 선생의 애제자가 됐다. 그런 면에서 박 목사는 두 분의 사상을 이어갈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따진다면 박 목사는 상대적으로 함석헌 선생에 대한 전문성이 더 강하다.

우리 사상사에서 함 선생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연세대 신학대학 명예교수인 유동식 박사는 ‘대표적 한국인’이라는 글에서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로 원효와 율곡과 함석헌을 꼽았다. 유 박사는 세 사람 가운데서도 함석헌이 동서문명이 만나는 세계적인 지평에서 창조적이고 종합적인 사상을 펼쳤다는 점에서 더욱 위대하다고 보았다.

박 목사는 함 선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함석헌은 자신의 삶과 민족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전 지구적 전망을 가지고 생각하고 실천했던 뛰어난 사상가이다. 21세기의 화두가 ‘세계화’와 ‘생명’이라면 함석헌이야말로 평생 ‘세계화’와 ‘생명’이란 주제를 놓고 생각하고 글 쓰고 행동했던 사상가이다. 또한 그는 늘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며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상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21세기, 새 시대의 사상이다.” 함 선생에 대한 자부심과 그의 사상을 계승하려는 박재순 목사의 의지가 묻어있는 말이다.

박재순 목사에게 드리워진 큰 짐은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박 목사가 그런 소명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이가 씨알사상에 입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씨알사상은 배움과 깨달음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을 강조한다. 씨알사상의 실천이 우리 사회의 특징이 될 때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민이 사는 가장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 확신을 준 박재순 목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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