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미지왕"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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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신인다움'의 조건으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낯선 시각,이야기 형식을 꼽는다면.미지왕'은 그런대로 새로운 영화다.결혼식장에서 실종된 신랑을 찾아 장르의 곳곳을 들쑤시며 좌충우돌 헤매고 다니는 내러티브는 그 자체로 활기넘친다.
현실에 자유 연상이 끼어들고 일상이 환상으로,다시 실제로 돌변하는 형식은 그 이전까지 우리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시도다.
그 점에서 김용태 감독은 충분히 신인답다.그러나 변기와 오물의 상상력에 관한 실험이 있을만큼 있어온 기왕의 세계 영화들에비할 때.미지왕'은 그다지 낯선 영화가 아니다.
.미지왕'이 겨냥하고 있는 지점은 부르주아적 문화 유산이라 일컬어지는 관습들,예컨대 폐쇄된 내러티브랄지 수미일관성.엄숙주의.정상성.주체.의미부여.고상함 따위들이다.주인공 왕창한은 이런 문화적 덕목에 반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를 중심으로 이른바 천박함.비속함.통속성이라는,고래로 백안시되던 영토에 진지를 구축한다.
그리고 형상화에 따른 어떤 규칙도 두지 않고 모든 것을 대상으로 싸워나간다.
불타는 전의 앞에서 무협지와 멜로드라마,갱스터와 청춘 영화의공식이 무너지고 순결과 타락,감정과 이성,용기와 비굴의 윤리적준거가 해체된다.그 싸움은 너무나 치열해 주인공의 캐릭터와 심지어 영화의 주제조차 배반한다.
왕창한은 바람둥이 호색한이자 젊은 카사노바이면서 지하철의 치한을 격퇴하는 정의의 신세대고,변강쇠면서 첫사랑이 남긴 상처 때문에 방황하게 된 순정파 청년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독해의 면에서 일단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어처구니들이 사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모험의 유희,상업적.세속적 오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남아있을 순수에 관한 갈망,증언의 무용성,혹은 신혼열차 강도로 돌변하는,빈 곤한 수사력의 경찰에 관한 은유….
그러나 이건 그렇게 읽을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다는 추리의 가능성일뿐 개연적인 해석은 아니다.
관객마다 다양하게 읽어주기를 바라는 감독의 의지는 바로 이 가능성의 차원에서만 성취된다.
.미지왕'의 주제이자 지배정서인 .경망스러움'은 경직된 문화적 허위의식이라든가,예술적 공식에서 우리를 유쾌하게 빼내기에는다소 시효가 지난 느낌이나 불난 집에 선풍기를 튼다든가“조금씩싸서 말려”따위의 70~80년대식 조악한 개그 의 남용,외국 코미디에서 숱하게 써먹은 만화적 발상법의 안이한 차용에 일차적원인이 있다.유희의 대상에 대해 평면적으로 고민한 결과다.
김정룡(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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