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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48. 올림픽 종목 태권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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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모임에서 연설하고 있는 필자.

  1994년 파리 IOC 총회는 서울올림픽 유치를 결정한 81년 바덴바덴 총회에 버금가는 역사적 현장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파리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다른 종목이 100년 걸려서 이뤄놓은 것을 태권도는 20년 만에 이뤘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수출한 두 번째 스포츠(첫 번째는 유도)’라고 평가했다.

73년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창립한 이후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기까지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2년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선수권대회를 열어 태권도를 알렸고, 지역 연맹을 차례로 창설해 나갔다.

75년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가입을 시작으로 76년 국제군인체육회(CISM) 가입, 80년 IOC 승인종목 채택, 82년 아프리카게임 정식종목 채택, 83년 팬암게임 정식종목 채택, 86년 서울과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 88년 서울과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시범종목 채택 등으로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나갔다.

미국 조시학·전인문·이준구(준 리)·김기황·박연희·박연환·김일회·이상철·김유진·권덕근·이형로·김찬용·민경호(켄 민)·양동자, 프랑스 김용호, 독일 서윤남·김광일·박수남·김만금, 이탈리아 반석재·박영길, 오스트리아 이경명·이광배, 멕시코 문대원, 브라질 김영민, 페루 이기형, 호주 이종철·이종수, 캐나다 윤오장·이종수, 스위스 김명수, 아프리카 김영태·윤목, 스페인 이용우·어수일·김영기·최원철, 포르투갈 정선영, 태국 송기영, 대만 노효영 등 수많은 사범의 노력이 밑거름이었다. (지면 사정상 이름이 빠진 사범들에겐 미안하다. 모두 한마음으로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뛰어줬다.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올림픽 규정에 의하면 정식종목은 올림픽 개최 6년 전에 결정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기 위한 데드라인이 94년 파리 총회였다.

94년 9월 3일 파리 총회가 개막됐다. 당시 나는 IOC 제2부위원장 겸 TV위원장이었지만 태권도가 정식종목이 되리라고 확신한 사람은 없었다. 새로운 종목이 총회에 상정되려면 먼저 프로그램위원회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태권도는 93년 프로그램위원회에서 찬성 9, 반대 11로 부결됐다. 또 ‘유사 종목은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가라테나 우슈의 견제도 심했다. 더구나 북한의 지원을 받고 있는 국제태권도연맹(ITF)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 언론은 정식종목 채택이 불가능한 것으로 봤고, 정부도 무관심했다. 나의 활동은 IOC 내부에서 이뤄졌고, ITF나 가라테의 방해를 피하기 위해 전부 비밀리에 진행했다.

파리 데팡스에 있는 총회장 주변과 집행위원 숙소에는 북한 공작원들과 ITF계 사범들이 몰려와서 IOC 위원들 방에 매일 WTF 비방문서를 넣고 있었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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