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앤드차일드>공주병 수그러질 때까지 기다려 봄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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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공주병도 여러 가지.어린 여자애들이 동화책 속의 공주 차림을따라하고 싶어 하는 것도.공주병'이라 할 만하다.
큰애가 만 세돌 반쯤 된 가을 무렵부터 아침이면 치마타령을 해댔다.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너풀거리는 여름 레이스치마를 들고 와 그것을 입혀 주지 않으면 세수도 안하고 어린이집에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남편과 나는 딸아이의 그런 태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우선 차근차근 설명해 보려고 했다.“머리가 길다고 다 예쁜 게 아냐.어떤 사람은 긴 머리가 어울리고 어떤 사람은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리는 거야”등등.하지 만 딸애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돌아서면 또 치마타령을 했다.그래서 우리 부부는 애가 원하는 만큼,아니 그 이상을 해줘 보기로 했다.옷가게에 가서 공주옷 같은 것을 샀고,스타킹도딸애가 말하던 주홍색과 노란색을 샀다 .딸아이는 너무나 흡족해하며 인사도 애교있게 하고 어린이집으로 가곤 했다.
겨울방학이 지나면서 딸아이의 공주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졌다.봄이 되어 바깥놀이가 많아질 무렵“엄마,치마 입고 미끄럼 타니까 스타킹에 구멍나.바지 입고 갈래”하며 바지를 찾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일상사에 녹아 있는 사회통념들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갖는지를 절감했다.그리고 여유있는 기다림과 자신감이 아이를 키우는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도.
노영주<경기도성남시분당구시범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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