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잡아라>농산물 유통구조 모순투성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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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충북청주시에 사는 5트럭 기사 金모(38)씨.인근 청원군에서시금치를 싣고 오후7시인 경매시간을 맞추기 위해 오후4시쯤 서울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을 향해 출발했다.중도에 퇴근시간과 맞물려 국도는 막힐 것이 뻔하다는 생각에 경부고속 도로를 택했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올라온 농수산물 운송트럭으로 가득하다.천안휴게소에 들렀을땐 70여대의 농수산물 트럭이 빽빽이 들어서 주차조차 못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수원 인근에서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오후7시 경매에는 맞추지못하고 결국 30분 늦은 7시30분에야 겨우 짐을 부릴 수 있었다.가락시장에는 金씨처럼 지방에서 농산물을 싣고 온 트럭이 하루 평균 1천2백대나 된다.
그러나 金씨가 애써 부린 시금치는 서울 가락시장이 종착역은 아니다.경매가 끝난 뒤 중도매인 손에 의해 다시 트럭에 실려 오후10시쯤부터 수원.원주.천안등 지방도시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또한번 타야 한다.
심지어 출발지인 청주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실제로 金씨가싣고 온 시금치는 경매를 마친 뒤 오후11시에 다시 청주.수원등으로 분산돼 다음날 새벽 재경매가 이뤄졌다.
가락동시장 경매를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농산물은 비단 시금치뿐만이 아니다.김장철 배추.무를 제외한 감자.양파.고추.깻잎등 가락동시장에서 취급하는 1백50개 품목의 대부분이 무조건 서울로 집중된 뒤 다시 산 지 인근 지방도시로 되돌아 가는.역류현상(이중경매 포함)'이 일어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인천.수원.청주.천안등 중북부 지방도시의 농산물 가운데 60~80%는 가락동시장을 거쳐온 것이다.
지방 도시들이.규모의 영세성'때문에 도매시장 기능을 상실,결국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조차 서울로 갖고 가 경매에 부친 뒤 다시 갖고 내려오는.난센스'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통연구소 김영준 부소장은“취급물량이 연간 30만 이상은 돼야 도매시장의 거래가 성립되는데 청주.수원의 경우 95년 기준으로 각각 10만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도매시장 기능이 가락동으로 흡수돼 이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 다.
유통전문가들은“단기적으로는 일본의 전송제도를 도입,최소한 도매시장간에는 물건이 오가거나 이중경매를 하지 않고 서류상으로만거래가 이뤄지는 방안을 마련하고 중장기적으론 지방경제 활성화를통해 지역별로 도매시장 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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