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南北韓관계 개선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위기는 항상 기회를 수반하게 마련이다.이번 잠수함사건의 타결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시 이 평범한 금언을 되새겨 본다.
지난해 9월 발생한 북한 잠수함침투사건은 그동안 풀릴줄 몰랐던 남북관계를 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그러나 북한 외교부대변인의 사과성명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한걸음에 결빙기를 뛰어넘어 해빙기로 내닫는 느낌이다.잠수함침투사건 이전에 도 멀게만 느껴졌던 4자회담 설명회가 이달중 열리게 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기회란 당사자들이 이를 잘 활용했을 때만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남북관계도 예외는 아니다.사실.천배,백배의복수'를 다짐하던 북한을 전례없는.사과'로 내몬 것은 대화의지가 아니라 그들의 심각한 경제난이었다.따라서 향후 남 북관계가자연스럽게 대화국면으로 이행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은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남한과의 접촉을 꺼려왔다.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동안 외부 적대세력과의 긴장고조를 통해생겨난 위기의식을 가지고 사회내부를 단결시키고 단속하는,이른바.적대적 의존관계'의 대상으로 남한을 상정해 왔 다.이는 현시점에서 북한의 남한기피가 체제유지와 관련된 전략적 선택임을 의미한다.더욱이 북한지도부와 현정부는 김일성(金日成)사후 너무 많은 악연(惡緣)을 쌓아왔다.따라서 올해에도 남한 기피라는 북한의 관성(慣性)이 크게 고쳐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문제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경제다.
현재 북한의 경제난은 내부자원의 극심한 결핍 속에서 나타나고있다.이는 북한경제의 회생책(回生策)이 어떤 경우에도 대외경제관계로부터 찾아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그렇기 때문에 북.미,북.일관계 개선과 그에 수반되는 서방경제의 북 한지원은 곧 북한의 사활적인 생존전략에 해당한다.여기서 이번 잠수함사건은 적어도 남북한간에 긴장상태가 지속되는 한 이 전략의 수행 자체가 지난(至難)한 일임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북한은 이번 사건을 통해 남북대화를 우회(迂廻)한 대미 관계개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을 것이다.따라서 올해는 제한적이지만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그리고 그 채널은 4자회담설명회와 같은 다자적인 틀과 남북한 당사자접촉이라는 두가지 방식이 모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물론 남북한 접촉은 가급적 식량지원과 경협 등 주로 경제분야에 국한하려 할 것이다. 올해 남북대화에 임하는 한국정부의 입장도 간단해 보이지않는다.그것은 12월에 있을 15대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는 크게 두가지 점에서 대북(對北)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첫째,12월 선거를 의식해 정부의 통일정책이 어느 때보다 여론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으며 전개되리라는 점이다.
주지하듯이 우리 여론의 대북 관용도는 매우 낮다.이러한 사실은.95년 쌀 지원'에서처럼 자칫 일이 어긋났을 때 여론의 비난을 살 가능성이 높은 과감한 대북 포용정책의 추진이 어려우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매우 제약돼 있다는점이다.정부입장에서는 본격적인 선거분위기로 접어들어서도 정치적으로 위험부담이 있는 남북관계개선을 새롭게 추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부의 남북대화 추진시기는 아무리 늦춰잡아도 여름을 넘기기 어렵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잠수함사건 타결과 함께 시작된 올해의 남북관계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제한된 관계개선이 이뤄지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李 鍾 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