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有志 총동원 올라운드 로비-미국 지방행정의 세일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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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 주정부들의 외국기업 유치경쟁은 민간기업들의 생사를 건 경쟁과 다를게 하나도 없었다.오스틴공장의 건설을 책임져온 이승환현지법인 사장은 삼성이 94년 처음으로 미주내 현지공장 건설계획을 발표하자 미국 50개 주의 절반인 25개 주가 유치를 제안해왔다고 말했다.주마다 세금감면에서 인접도로 건설,기술인력 제공등 현란한 지원계획들을 제시했다.1차 서류검토 후에 대상을텍사스.오리건등 5개 주로 압축한뒤 기업측 관계자들이 직접 현지를 방문하게 됐다.삼성을.모시려 는'각주의 유치경쟁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오리건주의 경우 기업관계자들이 방문하던 날 국빈처럼 대우해 방문단이 난처할 정도였다.공항은 물론 숙소인 호텔에도 태극기를내걸었고 호텔의 집기는 한국제품으로 바꿔놓았다.TV와 비디오에서 냉장고.커피포트.가습기에 이르기까지 삼성제품 일색이어서 절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주지사의 관저나 호텔등에서 대규모 파티를 열면 현지의 주요 인사들이 2백여명 가까이 참석하며 늘 성황을 이뤘다.각주가 펴는 유치경쟁에서 공통적인 패턴의 하나가 .올라운드'로비전.즉 해당 주및 지역의 상.하원 의원은 물론 주지사를 비롯한 고위직공무원들,대학총장,지방언론사,기업가에서 재향군인회,심지어는 오페라단장에 이르기까지 기업유치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사들도 총동원됐다.예를 들면 지역 언론은 해당기업을 소개하는 기사를,대학은 총장이 직접 나서 산학협동 세미나와 파티를 열어주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주축이 돼 .한국의 날'을 선포한 주도 있었다. 행정당국마다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의 지명을 기업이름으로바꿔 부르겠다고 제의했다.텍사스주의 포트워스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출마했던 거부 로스 페로의 아들 페로 주니어가 직접 경비행기를 몰아 대표단에게 공장입지를 견학시키는 성의를 베풀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제시하는 지원계획의 치밀성이었다.1백여개에 달하는 항목중 예를 들어 공장가동을 위한인력수급 계획서를 보면 공장을 기점으로 반경 30분,1시간및 1시간30분등의 통근거리에 위치한 주민들의 수효 ,소득,학력,기술수준,주요 종사업종등 잠재 노동력들의 질(質)과 수급현황을점쳐볼 수 있는 기본자료를 완벽하게 제시,기업측의 판단을 용이하게 해줬다.오스틴지역으로 최종결정된 사실을 알리자 유치경쟁에나섰던 각 지방정부들은“다음에는 우리 주를 선택해달라”는 정중한 답신을 보내왔다.그들은 아직까지 정기적으로 갖가지 행정지원과 편의제공 사항및 지역안내서등을 보내온다.민간기업의 영업사원을 능가하는 끈기와 집념이다.
[오스틴=김용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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