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변자’ 미 상원 세출위원장 내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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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 상원에서 가장 큰 위원회이면서 예산심의권을 지닌 세출위원회 위원장에 일본계 2세인 대니얼 이노우에(84·민주·하와이·사진) 의원이 내정됐다. 이노우에는 지난해 하원에서 가결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강력히 반대했던 인물이다. 그는 연방 하원의원 재선, 상원의원 8선의 경력으로 의회에서 49년 동안 활동했다.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가 세출위원장에 내정됨에 따라 미국 정치에 미칠 일본의 영향력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노우에는 상원 다선 순위에서 로버트 버드 현 세출위원장과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에 이어 셋째로 높다. 상원 상업 및 과학 교통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정보위원장, 이란 콘트라 사건 조사 특별위원장 등도 지냈다. 오는 20일로 91세가 되는 버드는 후임자로 이노우에를 지명했다.

이노우에는 7일 “지난 30여 년 간 나를 지도해 온 정치적 스승의 자리를 계승하기 위해 충분히 준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이노우에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2년 뒤 학업(하와이 대학 의학부)을 중단하고 미군에 자원 입대했다. 미국인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이다. 그는 주로 일본계로 구성된 ‘니세이(二世) 442연대’에 소속돼 이탈리아·프랑스 전선에서 전공을 여러 번 세워 하사에서 장교로 승진했다. 총상으로 오른팔을 잃은 그는 최고훈장을 받았다.

이노우에는 2006년과 2007년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본 정부는 그를 앞세워 미국 하원과 민주당 지도부에 강력한 로비전을 펼쳤다. 이노우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와 미국 민주·공화당 지도부의 면담을 주선했다. 결의안을 주도한 일본계 3세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에겐 “일본은 충분히 사과했다”는 편지를 보냈고, 결의안 반대 성명도 냈다. 그러나 의원들은 “진정한 화해는 반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한 혼다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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