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600조 달러는 허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호 30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눈총받고 있는 금융 파생상품의 시장 규모는 올 6월 말 기준으로 668조 달러로 추정된다. 전체 세계 경제 규모의 12배에 달한다. 파생상품(Derivatives)은 글자 그대로 뭔가에서 파생되어(derived)나온 것이다. 기업의 주식이나 회사채 등이 그 원본(元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배(원본 가치)보다 배꼽이 십 배 넘게 더 클 수가 있는가.

금융위기의 ‘시한폭탄’이라는 신용부도스와프(CDS·Credit-Default Swaps)로 예를 들어 보자. 한 항공사에 1000만 달러를 빌려준 헤지펀드가 항공사의 부도로 빌려준 돈을 못 받을 경우에 대비해 투자은행과 CDS 계약을 한다. 연간 1%의 보험료(spread)를 지불하는 대신 항공사가 부도 날 경우 투자은행으로부터 보험금 1000만 달러를 받는 계약이다. 이 거래에서 실제 오가는 돈은 보험료로 지불되는 10만 달러다. 그러나 계약액은 1000만 달러로 잡힌다. 668조 달러는 이런 약정의 명목금액을 모두 합친 것이다.

당첨금 1억 달러짜리 복권을 200만 장 판매했을 때 이 복권의 시장 규모를 1억 달러에 200만을 곱해 200조 달러라고 한다면 누가 보아도 난센스다. ‘파생상품 저널’의 창간 편집인 스티븐 피글루스키(금융학)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미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뉴욕 증시 상장 주식 가액 같은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틀린 숫자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668조 달러 대부분이 실제 돈(real money)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668조 달러 가운데 59%인 393조 달러는 금리나 인플레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위험 회피를 노린 금리스와프라고 한다. 금리나 인플레는 실제 변동이 작아 금리스와프 자체는 폭발성이 없는 밋밋한 상품(plain vanilla)이다. 문제는 55조 달러에 달하는 CDS다. 2002년 워런 버핏이 ‘금융 대량살상무기’로 경고하면서 갖은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이 CDS 거래 규모조차 갈수록 줄여 발표되고 있다. 지난달 국제 스와프 및 파생상품협회(ISDA)는 올 6월 말 현재 CDS 계약액을 47조 달러라고 발표했다. 1년 전 62조 달러에서 15조 달러가 줄어든 것이다. CDS가 투명성 결여로 금융시장의 혼란을 증폭시킨다는 비난과 함께 당국의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뉴욕 증권예탁결제원(DTCC)은 오랜 침묵을 깨고 거래량 내역을 매주 공개키로 결정하면서 첫 작품으로 지난 4일 10월 말 현재 CDS 계약고를 250만 건에 33조6000억 달러라고 밝혔다. 47조 달러에서 넉 달 만에 33조6000억 달러로 줄어든 것이다. 미국의 채권 잔액 30조8000억 달러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많은 계약이 서로 얽혀 있어 중복된 부분을 떨어낸 결과라고 한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CDS로 물린 돈은 4000억 달러로 추정됐지만 실제 물린 돈은 720억 달러였고, 그것도 중복 거래를 떨어내고 나니 52억 달러에 불과했다고 한다. CDS 거래의 큰손은 GE나 모건스탠리·골드먼삭스 같은 기업·금융회사들만이 아니라 터키·이탈리아·러시아·브라질 정부 등이 톱10에 올라 있으며, 헤지펀드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파생상품, 특히 문제의 CDS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과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아 DTCC는 이번 주부터 매주 전주의 거래량과 명목거래액 및 순거래액을 동시에 공개해 악의성 정보 차단에 나선다고 한다.

47조 달러에서 33조6000억 달러로 줄어든 것도 의아한데, 심지어 전체 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실제 돈이 오가는 기준으로 대충 15조 달러라는 추정까지 나온다. 금융위기가 실제 이상으로 과장됐다는 얘기인가. 거래액을 부풀린 측면도 있지만 앞으로 규제를 의식한 관련 업계의 몸 낮추기 인상도 짙다. 고무줄 셈법과는 상관없이 파생상품은 2년마다 거의 배로 증가하고 있다. 위험이 있는 곳에 프리미엄을 주고 보호받으려는 수요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컴퓨터 모델로 상품 개발도, 복잡한 가격 산정도 자유자재다. 경영대학원들은 이에 필요한 수학 두뇌들을 다투어 배출하고 있다. 장외에서 사사로이 거래하며 668조 달러에서 15조 달러로 몸집을 키웠다 줄였다 하는 이 ‘괴물’을 어떻게 순치해 투명성의 우리에 가둘 수 있을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