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무원 탓하는 한나라당 여당 자격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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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공무원들이 안 움직인다”는 불만을 잇따라 털어놓고 있다. 정권 초기부터 들어온 얘기다. 당시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8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도 같은 얘기를 반복하니 한심하고 안타깝다. 마치 집권 여당이 스스로 무지와 무능을 털어놓는 것처럼 들린다.

‘무지’란 직업공무원제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직업공무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행정의 안정성을 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를 장·차관으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집권 이후 새로 임명된 장·차관을 통해 공무원 조직을 지휘하고 통치철학을 구현해야 한다. 집권 여당이 행정부와 손발을 맞추는 당정협의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다 마련돼 있다.

따라서 공무수행의 방향을 정하고 공무원을 지휘해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이끌어가는 책임은 집권 여당에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직업관료인 1급 이하 공무원을 탓하는 것은 직업공무원제에 대한 이해 부족이거나 책임 회피다.

‘무능’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지적처럼 정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인사의 난맥상이다. 집권 여당은 정작 직업공무원제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전문성과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적재적소 인사를 하지 못했다. 안정성도 무시했다. 낙하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직업관료까지 정실인사에 휘둘리는 바람에 공직사회의 불만이 높다.

직업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고 장·차관이 새로 부임하면 그들의 생각에 맞춰 일을 하는 것이 공무원이다. 장·차관의 지시를 거부하는 공무원은 없다. 그러나 사기가 떨어진 공무원은 움직이지 않게 마련이다.

한나라당은 직업공무원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집권 여당의 리더십에 문제가 없는지 먼저 점검해봐야 한다. 10년 만의 정권교체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집권 8개월, 남 탓하기엔 늦은 시점이다. 하지만 5년이란 집권 기간을 생각하면 조바심 낼 시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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