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회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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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존슨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월남전 주역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종전(終戰)20년만인 지난해 봄 회고록.베트남전의 비극과 교훈'을 내놓았을 때 이 회고록에 대한 반응은 양극을 치달았다.장관사임을 전후해.살인자'.전범(戰犯)'으로 불 리는 동시에.반전(反戰)운동가'로 불리기도 했던 일을 다시금 연상케 했다. “오랫동안 고통속에 인내해온 침묵을 마침내 깨뜨렸다”“과감한 용기로 양심의 가책을 털어놓는데 성공했다”는 긍정적 반응과함께 “경박하기 이를데 없으며,진솔한 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호된 질책도 쏟아져 나왔다.“자기자신을 포함한 전쟁도박꾼들의 얽히고 설킨 개인적 동기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 사람도 있었다.
맥나마라의 경우뿐만 아니라 어떤 회고록이든지 칭찬이든 비난이든 일방적 평가만을 받기는 어렵게 돼 있다.바로 그 점이 회고록의 일반적 속성이기도 하다.물론 당사자의 정직성이나 진실성이판단기준이다.당사자가 제아무리.진실'을 강조해도 읽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진실하지 못한 것이 되고,그럴싸하게 포장된거짓도 읽는 사람이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가치있는 회고록'이 되는 것이다.
19세기말 영국 총리를 지낸 디즈레일리나 동시대의 독일 철학자 쇼펜하워는.역사보다는 회고록을 읽는 것이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고 회고록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대다수의 회고록들은 거대한 쓰레기더미일 따름'이라며 평가절하한 학자들도 많다.그래서역사가의 제1차적 과업이야말로 회고록속의 엄청난 쓰레기(거짓)들을 제거해내는 일이라는 이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항상 어떤 식으로든 편파적이 되며,스스로를 가능한한 유리하고 의미있는.빛'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욕구경향을 보이게 마련이다.그것을 검증하는 일은 후세 역사가의 몫이다.
12.12,5.18 등의 사건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 전대통령의 부인이 썼다는 회고록도 마찬가지다.이미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사실여부를 가리는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회고록에 등장하는 제삼자가 회고록■ 쓴다면 전 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진실을 철저하게 밝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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