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장을 잘되게 하는 게 개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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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은 첫 담화에서 경제 살리기와 민생 안정을 특별히 강조했다. 이는 중요한 변화다. 이를 계기로 부처 간 혼선 등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걸림돌이 해소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盧대통령의 발언을 뜯어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경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의 발언 행간에는 여전히 기업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재계가 겉으로는 환영하면서 속으론 불안해하고 있다.

盧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위기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개혁의지도 재삼 강조했다. 이는 재계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맞는 말이다. '인기를 좇아 허겁지겁 대책을 내놓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3.1%에 머물고 신용불량과 대량실업으로 서민은 절망에 빠져 있다. 투자와 소비는 죽었고, 기업인은 의욕을 잃고, 정책은 개혁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해외 변수는 더욱 심각하다. 모두 살기가 어렵다는데 경제위기가 아니란 말인가.

위기 처방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처방이 나올 수 없다. 우리가 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개혁이냐가 문제다. 시장이 환영하지 않는 개혁은 개악이다. 시장이 활발히 돌아가 성장하고 기업들이 이익을 많이 내게 하는 개혁, 그것이 개혁의 실체가 돼야 한다. 집권세력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하여 '반개혁'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 주장은 개혁을 하되 옳은 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인의 절규를 '음모'로 적대시하거나 기업인 이기주의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으려 할 때 대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盧대통령은 20대 그룹 총수를 만날 예정이다. 재계 대표들의 말도 듣고, 뒤이어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것을 당부한다. 주변 개혁세력만이 아니라 여러 계층의 소리를 듣고 현장을 보면 해법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