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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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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며칠 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4년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매년 세계 각국의 경쟁력을 평가해 발표하는 IMD는 올해 한국의 종합적인 국가경쟁력을 60개 국가 및 지역 경제권 중에서 35위로 평가하고, 아시아에선 싱가포르(2위).홍콩(6위).대만(12위).말레이시아(16위).중국(24위).인도(34위)보다 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노사관계는 지난해에 이어 전 세계에서 꼴찌였고, 대학교육 경쟁력도 꼴찌에서 둘째인 59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평가 결과를 두고 많은 사람은 잘못된 정부 정책과 부실한 대학교육이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질타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객관성 없고 편향된 평가이므로 무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사실 어떠한 평가도 평가대상의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모습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특히 '국가경쟁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전 세계 국가를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기에 IMD는 "한 나라가 자기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좋은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목표를 밝히면서 친(親)기업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IMD는 1인당 국민소득이나 총연구개발 투자액과 같은 객관적 통계자료 211개와 함께 각 나라에서 활동 중인 기업의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112개 항목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해 순위 결정에 반영한다. 그런데 객관적인 통계수치는 별 문제가 없지만 설문조사는 기업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기업 쪽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또한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느끼는 것과 다르게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대학교육의 경쟁력 평가는 "그 나라의 대학교육이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킨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설문조사로 순위를 결정하는데, 올해는 우리나라가 꼴찌에서 둘째를 했지만 지난해와 지지난해엔 일본이 연속 꼴찌를 했고 한국은 그보다 몇 단계 높은 순위를 차지한 바 있다. 물론 일본의 대학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몇 년 연속으로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일본 대학의 수준이 세계에서 꼴찌고 한국의 대학보다 못하다는 평가에 수긍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주관적 평가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거나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그 나라에서 기업 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경청할 가치는 있을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 대학교육의 경쟁력 평가에서 계속 바닥권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 나라의 기업인들이 대학교육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기에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살펴보고 졸업생의 질을 높이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사관계가 꼴찌라고 평가되는 것에 대해 정부와 노조는 편향된 시각이라고 무조건 매도할 게 아니라 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내가 기업을 불안하게 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현장 기업인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어찌됐든 실제로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현장의 기업인들이기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그들의 불안감이나 불만을 해소시켜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든 평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그 효용성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기업 투자는 줄고 경제가 어려울 때 좋지 않은 IMD의 평가성적표를 받아들고 서로 너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국제적인 기준에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은 부문의 당사자들이 다시 한번 반성의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