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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돈] 5. 영화 : 헐리우드, 길 비켜라(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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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한국영화가 부흥기를 맞게 된 데는 결국 ‘사람’의 힘이 가장 컸다. 영화계에 인재가 쏠리니 극장으로 관객이 몰렸다. [김춘식 기자]

2004년의 한국 영화는 눈부시다. 100억원대 제작비를 들인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이하 태극기)가 1000만명을 웃도는 관객을 동원했고, 이에 힘입어 4분기 한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72.6%로 치솟았다. 저금리와 경기 침체의 와중에 영화산업의 약진은 단연 돋보인다. 그러나 영화로 돈 벌기가 보기만큼 쉽지는 않다고 영화인들은 입을 모은다.

◇블록버스터, 실패의 추억='실미도'와 '태극기'이전까지 이런 대작 영화는 충무로에서 '재앙'으로 통했다. '튜브''아 유 레디''성냥팔이의 소녀' 등 50억~100억원대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들이 하나같이 손익분기점을 한참 밑돌았기 때문이다. 이들 영화가 줄이어 개봉한 2002년 한국 영화계는 손익률 마이너스 17%, 편당 적자 5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연간 만들어진 78편 가운데 저예산 영화를 제외한 64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전년(2001년)만 해도 플러스 18%의 수익률, 편당 4억5400만원의 수익이 집계됐으니 통계의 오차를 감안해도 영화시장 전체에 얼마나 타격이 컸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사무국장은 "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영화로 실험을 하겠다는 것이 무모했다"고 돌이켜본다.

◇125만명 보아야 '본전'='실미도'와 '태극기'는 이들 영화의 제작.투자사로서도 예외적인 작품이다. '실미도'의 시네마서비스와 '태극기'의 투자사 쇼박스의 주력 상품은 한국 영화의 평균(2003년 현재 25.5억원, 아이앰 픽쳐스 자료)을 넘지 않는 순제작비 20억원대의 영화들이다. 여기에 평균마케팅비 10억~15억원을 추가하면 영화의 총 제작비는 30억~35억원이 된다.

한국 영화는 입장권 한장 7000원 가운데 50%가 극장 몫이다. 나머지 50% 가운데 배급사의 수수료로 7~10%(700원)를 떼면 영화를 만든 제작사와 돈을 댄 투자사에 돌아오는 몫은 어림잡아 2800원이다. 따라서 총 제작비 30억~35억원을 뽑으려면 전국관객이 최소 125만명은 돼야 한다. 이렇게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사실 제작사는 손해다. 영화 한편당 1~3년이 걸리는 기획.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들어가는 경상비는 별도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사와 제작사가 보통 4대6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 여기서 버는 돈이라고 모두 제작사 몫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충무로에서는 웬만큼 이름있는 주연배우들이 계약서에 지분참여 혹은 러닝개런티를 요구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완전 '초짜'가 아니라면 감독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나리오 작업까지 병행하는 감독들의 지분율은 최대 10%를 넘는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제작자 좋은 시절 다 지났다"고 곧잘 푸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함께 일하던 후배 프로듀서들을 제작사로 독립시킨 강우석 감독은 "영화 하나 흥행해서 돈 벌었다고 하다가도 몇달이 못돼 사무실 운영할 돈을 빌리러 온다. 번 돈은 시나리오 몇편 개발하고 감독 계약하는 데 다 썼다고 한다"고 전한다.

◇北美시장 수출 급증="아시아 영화의 맹주 자리를 곧 한국이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영화인들이 늘고 있다. 제작 중인 영화 '역도산'은 기획단계부터 한국 영화의 주요 수출시장인 일본을 염두에 뒀다. 일본 측 제작자와 인기배우를 참여시키고, 대사 역시 상당 부분이 일본어다. 최근 제작발표회를 연 공포영화 '분신사바' 역시 일본 측과 300만달러의 미니멈 개런티 계약을 했다.

감독의 전작 '폰'이 일본 흥행에 성공한데다 국내보다 공포영화의 저변이 넓은 일본 시장을 일찍부터 염두에 두고 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세계 최대규모인 북미시장의 수출판매 액수도 급증 추세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해외수출은 편수로 164편, 액수로 3000만달러를 넘어섰다. 전년에 비해 2배이상 성장한 액수다.

이 중 북미시장의 점유율은 전년의 5%에서 15%로 크게 늘어 유럽시장 규모에 육박했고, 액수로는 무려 5배 이상 늘어났다. 200만달러에 팔린 '장화 홍련'을 비롯,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가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을 꾸준히 구매한 결과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전체 흥행수입에서 해외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0%(2002년 현재 6.6%)가 안된다. 미국이 전체 흥행수입의 절반, 홍콩은 3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데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똑똑한 돈이 영화의 미래다=시네마서비스의 심재만 이사는 "'실미도''태극기'의 성공 이후 '(돈을) 많이 쓰면 많이 번다'는 식의 얘기가 나오는 게 제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쇼박스의 정태성 상무도 "두 영화의 성공이라는 현상을 가지고 한국 영화의 패러다임이 바뀐 양 접근하는 시각이 문제"라고 한다.

충무로의 미래를 낙관한다면 돈보다는 사람 때문이다. 과거의 제작사가 대표.프로듀서.제작을 겸하는 1인 위주였던 것과 달리 기획.제작.마케팅 등 분야별로 전문인력을 키우고 있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스태프를 구성할 때도 5, 6년 전만 해도 감독이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로 정했지만, 지금은 회의로 결정한다"고 전했다.

눈부신 2004년을 준비하던 지난해 충무로의 화두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웰 메이드(well-made) 영화'였다. '살인의 추억''동갑내기 과외하기''스캔들-남녀상열지사''장화 홍련''황산벌''올드 보이' 등 장르를 불문하고 기본을 영리하게 다진 영화들이 고루 등장하면서 몇몇 잊힌 블록버스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2003년 영화계는 편당 2000만원이라는, 소폭의 흑자로 반전됐다.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큰 돈'이 아니라 이 같은 다양한 시도를 안정적으로 줄잇게 할 '똑똑한 돈'이다.

이후남.홍수현 기자<hoonam@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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