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獨의'바나나 탈출'을 회상하며-北 기아 大탈출 대비할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아와 바나나엑서더스.
북한인 김경호(金慶鎬)씨 일가 대탈출이 기아의 엑서더스라면 89년 여름 구동독난민의 탈출은 바나나엑서더스라고 말할 수 있다. 헝가리에 휴가 갔던 구동독난민들이 오스트리아국경을 무사히넘었을 때 마중갔던 서독인들이 먼저 선물한 것은 바나나와 샴페인 이었다.동독인의 엑서더스는 굶주림보다는 바나나가 상징하듯 과일과 야채 결핍에도 원인이 있었다.국영배급소에 빵 의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났지만 북한처럼 아사자가 속출한 절망적 상황은 아니었다.그럼에도 동독은 엑서더스가 증폭돼 체제붕괴와 통독으로진전됐다.
압록강과 두만강 결빙후 북한인의 기아대탈출이 감행될 가능성은매우 높다.식량문제를 해결 못하는 국가는 존재이유를 상실하는 것이며,金씨 일가의 안내인이 사회안전원이라는 사실이 북체제의.
혼수상태'를 말해준다.
북한인의 기아엑서더스에 직면한 우리정부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구서독은 사전에 제도적으로 난민문제에 잘 대처하고 효율적으로 소화한 모범사례로 평가된다.서독정부는 국민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했으며(기본법 11조)구동독주민을 서독국 적 소지자로간주했다(기본법 116조).따라서 동독난민은 간단한 심사만으로서독국적을 취득해 서독시민 대우를 받았다.
동독주민의 엑서더스는 서방의 자유와 번영을 향한 대탈출이라는평가가 일반화돼 있으나 구서독의 화해와 포용의 난민정책도 견인역할을 했다.난민들은 연방긴급수용소(베를린.기센.뉘른베르크등)에 수용되면서 각종 지원을 받았다.
정부보조금 1인당 2백마르크,주정부 보조금 가장 30마르크,가족 1인당 15마르크와 용돈(가장 15마르크,가족 각 10마르크)까지 받았다.또한 숙식비.의료서비스.기차표.이사비용 지원과 의복까지도 지급됐다.주수용소나 거주지에 이동후 받는 혜택과지원은 복지주택 우선입주권,생활용품 구입금 저리융자(최고 1만마르크),학자금 지원,자녀수당(동독거주 자녀포함),의료보험,연금보험,실업보험,실업수당,사회부조금등이었다.
또한 주택보조금.자영업개원지원.농업정착보조금등의 혜택이 있었는데,난민들이 서독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정부가 배려한 것이다.
50년부터 90년6월까지 동독의 서독이주민은 5백10여만명에 달했다. 바나나엑서더스가 있었던 89년엔 34만3천8백54명의동독인이 탈출했다.동독난민의 대탈출은 동독을.국민없는 국가'로만들 위험마저 나타냈다.이들의 탈출동기는 자유.인권등 정치적 이유가 56%,국유화.소득불만.생필품부족등 경제문제가 23%,가정과 개인사정이 15%로.배고파 넘어왔다'는 북한난민과는 큰차이가 있다.
金씨 일가를 맞으면서 구동독의 엑서더스를 상기하는 까닭은 독일통일이“하늘이 내려준 민족의 축복”이라고 한 독일인의 말과는달리 서독정부와 국민이 합심해 집행한 치밀한 난민정책과 준비작업이 가져온 대가임을 강조하려는데 있다.
최근 평양에 이익대표부를 둔 독일정보기관이 6백여만명의 북한난민 발생을 예고한 것은 기아라는 북한인의 탈출조건이 어느때보다도 성숙됐음을 지적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북.중 국경선에 북한의 기아엑서더스 발생과 북한공산주의체제 붕괴가 임박한 것으로 전망한다.동구 변동의 역사는 엑서더스가 시작되면 체제붕괴가 뒤따라 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정부와 국민 모두가 민족연대성을 갖고 북한 기아문제와 우발적 엑서더스에 대비하고 통일을 위한 민족적 결의를 다질때다.
주섭일 국제문제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