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5천명 집단학살 현장-성당 피신 투치족 몰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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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르완다 수도에서 30여㎞ 떨어진 하라마 지역에 위치한 하라마성당은 94년 종족간 벌어진 대학살의 처참함을 그대로 보여주고있었다. 현재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투치족에 의해 역사교육장으로 보존되고 있는 하라마 성당은 94년에 벌어진 투치.후투족 사이 2백여곳의 대학살 현장중 가장 참혹했던 곳이다.
94년 4월 후투족 출신의 대통령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후투족은“투치족의 소행”이라며 전국 곳곳에서 투치족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후투족에 의한 학살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하마라 지역 일대에 있던 투치족 5천여명은 하마라 성당으로 피신했다.
그해 4월15일 투치족이 성당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안 후투족민간단체인.인터함워'와 군인들은 하마라 성당을 쳐들어가 투치족들을 총.칼.몽둥이로 무참히 살해했다.50여평의 본당에 있던 5백여명의 투치족은 총탄의 집중세례로 숨졌으며 3개 성당 부속건물에 있던 8백여명의 투치족 역시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다. 성당안을 들여다 보는 순간 처절했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성당측이 이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보존하고 있는 현장에는 당시 숨진 사람들이 사용하던 이불과 옷가지에 유골이 뒤엉켜 썩어가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악취는 투치족들의 분노를대신하는 듯했다.성당 마당에 있던 투치족들은 쇠꼬챙이.곡괭이등의 흉기로 난자당해 살해된 뒤 마당 곳곳에 마구 매장됐다.
성당에 피해 있던 5천명 거의 대부분이 일시에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투치족은 매장된 시신을 발굴,본당옆 임시 가건물에 두개골과 시신을 별도로 안치해 놓고 있다.두개골들은 대부분 흉기에 맞아부서져 있었으며 일부 두개골에는 지금도 쇠꼬챙이가 박힌 흉측스런 모습으로 전시돼 있다.
일부 시신은 허리가 완전히 잘린 채 발굴되기도 해 종족분쟁에서 빚어진 인간의 광기가 얼마나 극악할 수 있는지,인간이 얼마만큼이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하마라 성당을 방문한 방문객들은“신이여 이들을 용서하지 마세요”“학살은 결코 인간이 하지 않은 악마의 짓”이라는등 인간에대한 분노와 연민을 나타낸 글들을 벽등에 새겨놓고 있었다.
[르완다=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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