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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황영조.이봉주 조련사 정봉수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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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세계적 마라토너 황영조를 빚어내고 이봉주를 마름질한 조련사 정봉수(61.코오롱)씨.바르셀로나(92년8월.올림픽).히로시마(94년10월.아시안게임).애틀랜타(96년8월.올림픽)에 이어후쿠오카에서 감동만점의.빅토리 선데이'를 엮어낸 연출자.그러나그는 환희의 뒤안길에서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손수 깎고 다듬어낸.마라톤명품'을 비추고 남은 스포트라이트가 주름깊은 자신의얼굴에 잠시 머무를 때마다 그는 온 국민을.승리로 중독시킨 죄'(?)의 무게를 새삼 절감한다 .오늘의 승리가 서너달 혹은 대여섯달 뒤 스타트라인에 설 제자에게 엄청난 중압감만 준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그래서 후쿠오카를 잊고 다음번 승리를 위해 벌써부터 채찍을 가다듬느라 바쁘다.서울대치동 숙소로 찾아가가슴속에 묻어둔 그 의 마라톤인생을 들어보았다.
[편집자註] -우선 축하드립니다..독종'.독사'라시더니 이봉주선수가 골인할 때 눈물까지 흘리시더군요.
“남들 다 보는 운동장에서 울어보기는 처음일거요.올림픽때도 안 울었어요.2분차로 이겼다면 안 웁니다.맨날 막판에 뒤잡히던봉주가 2초차로 이겨봤다는 그게 너무 대견했어요.봉주도 마지막까지 다른 선수를 달고가면 진다는 강박관념이 있었 는데 트랙싸움에서 이겨 자신감이 확 붙었어요.또 어떻게 키운 봉주입니까.
저참(3월.올림픽선발전겸 동아마라톤)에 황영조가 떨어지니까 뭐정봉수는 끝장이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들어가며….” -그 말씀은 나중에 하시고,도대체 정봉수감독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마라톤을 전혀 안하셨다면서요.
“지도하는 건 마라톤으로 안쳐줍니까.”(그는 지도자가 되기 이전 마라톤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35년7월 경북김천에서태어난 그는 고향 증산초등학교때부터 줄곧 1백.2백.4백릴레이등 단거리선수였다.경북도내 중.고대회,육.해.공군 체육대회에선날렸지만 태극마크 한번 달아보지 못했다.한창때 1백기록은 10초80대) -그런데 마라톤지도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한국스포츠가 엉성했지요.그 덕을 본 겁니다.전쟁통(53년)에 입대했다가 장기하사로 말뚝을 박고 62년2월까지 선수생활을했어요.단거리였지요.은퇴 이듬해 코치가 됐는데 보리밥도 제대로못먹던 판에 단거리,마라톤 따로 있습니까.코치랍 시고 이거저거다 했죠.72년 감독이 돼 일본으로 훈련갔는데 우리선수나 다를게 없는 일본선수들이 마라톤에서는 세계정상 수준이더군요.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을 것같아 책이고 테이프고 관련자료를 닥치는대로 사와 파기 시작한 겁니다.”( 소장자료 약5백건) -그래도.전공'때문에 고생 좀 하셨겠군요.
“제대(83년)하고 몇년간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코오롱 창단감독(87년)으로 들어온 뒤 정봉수가 마라톤을 뭘 아느냐고 사방에서 흔들더군요.특히 90년대 들어 김완기.황영조가 번갈아 한국기록을 내고 올림픽까지 우승(황영조)하니까 그런 선수 데리고 못하면 바보라는등 별 소리가 다 들립디다.황영조가 그렇게 되니까 고소해 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결국 좋은 실적으로 커버한거 아닙니까.훈련에 무슨 비결이 있습니까.
“죽도록 훈련해야 경기에서 산다,그거지 비결은 무슨….반 죽습니다.마라톤이 어디 장난입니까.42.195㎞를 2시간이상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경기예요.뛰기도 전에 거리와 시간에 대한공포가 덮칩니다.그래서 50㎞,60㎞ 뛰게 해 거 리공포를 극복(거리주)하고 3시간도 좋고 4시간도 좋고 반복해 달리게 해2시간10분가량 완주시간이 만만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훈련(시간주)을 집중적으로 실시합니다.말이 쉽지 1주일에 3백50㎞이상뽑을 때도 있습니다.경기가 더 쉽습 니다.스피드훈련도 고달퍼요.트랙에서 5천 13분대,1만 28분대를 거뜬히 뛰어야 합격입니다.그 안에 못들면 가급적 도로훈련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선수들이 잘 견딥니까.말 안듣는다고 마구 때리고 벌주(罰走)로 몇십㎞씩 굴려 녹초를 만든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밤중에 짐 싸들고 나간 선수도 있었지요.초저녁에 가출했다 생각이 달라졌는지 새벽훈련에 슬그머니 나타난 선수도 있고요.그래도 나는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자기들이 보다 과학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몰라도.백이면 백 들어보면 훈련 좀 편 하게 하자는 거예요.좌우간 유명한 선수는 모두 매밥노릇을 했다고 보면 돼요.힘들면 핑계대는 게 대부분 공부하겠다는 거예요.그러면 마라톤 뛰는 시간만큼 꼼짝 않고 책 붙들고 있을 자신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가라고 합니다.” -황영조나 이봉주도요.
“올림픽 금메달 땄다고 다음에 뛸 때 1라도 덜 뛰게 해줍니까.똑같아요.그러면 원점에서 다시 해야지요.대신.벌주'는 절대없습니다.명색이 마라톤 지도자가 벌을 줄 때도 컨디션에 무리가는 짓은 안해야지요.때릴 때도 다리나 허리같은 데 는 의식적으로 피했어요.요즘이야 나이가 들어 때릴 힘도 없고,선수들도 잘따라주니까 얼굴 붉힐 일도 거의 없어요.” -참,블로킹이다 치고빠지기 스퍼트다 밀어붙이기 스퍼트다 용어가 많아 배구인지 복싱인지 헷갈려하는 사람들도 많던데요.
“마라톤은 작전에 의한 경기입니다.마구잡이 오래달리기와 달라요.상대방.기온.습도.바람의 세기와 방향.코스 특성등을 고려한다양한 작전이 구사됩니다.아마 후쿠오카 마라톤을 유심히 보신 분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봉주를 비롯한 선두그룹이 서로 눈치를보며 앞에서 끌다 옆으로 비키고 바싹 붙어가다 앞으로 치고나가고 하는 걸 보셨을 겁니다.작전의 요체는 레이스를 자기 페이스대로 주도하라는 겁니다.지구력.스피드가 같은 선수가 똑같은 거리를 뛰더라도 그에 따라 피로도가 달라집니다.중.고등학교때 40대 체육교사와 함께 뛰더라도 교사의 구령에 맞춰 뛰다보면 학생이 먼저 지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재밌군요.
“재밌다니요.바싹바싹 피가 말라요.담배를 끊기 전(95년)까지는 출발에서 골인까지만 두갑을 피웠어요.이젠 물통을 대여섯개갖다놓고 벌컥벌컥 마십니다.후쿠오카서도 플라스틱병 다섯개를 비웠어요.어금니를 하도 깨물어서 이틀동안 음식조차 씹지 못했어요.” -좀 거슬리겠지만 돈얘기도 궁금합니다.전에 황영조가 그랬고 이제 이봉주도 1억원이상 출전료를 받는데 그중 얼마가 감독몫입니까.
“따로 주긴 뭘.” -선수랑 나누겠네요.
“돈 얘기는 하지 맙시다.내 월급도 모르는 사람한테.”(김순덕총무는 월급.보너스.포상금등을 합쳐 그의 연수입이 7천만원쯤된다고 귀띔) -그럼 투과니등 월드스타들을 다수 거느린 미국의루이스포소같은 매니저는 몇%정도 받습니까.
“한 20%.” -듣기 거북한 얘기입니다만 마라톤으로 유명해지고 나서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나 참,집사람(여우분.61)은 애들(아들.32,딸.26) 공부 뒷바라지하며 샌프란시스코에 있어요.미국 유진에서 전지훈련(올림픽 직전)할때도 만났고 한달에 두세번씩 전화도 하고 김총무가 생활비.학비를 꼬박 보내주고 있어요.나는 코오 롱창단(87년)과 함께 숙소로 들어왔어요.한번 해보자고 독하게 마음먹고떨어져 산 건데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니 원.” -마라톤이 뭐길래 딴살림까지 해가면서….건강도 안좋아 보이는데요.
“한국의 상징종목 아닙니까.개인적으로는 선수로 빛을 못봤으니지도자로라도 한을 풀어야죠.몸이야 뭐,당뇨가 한 20년쯤 됐고저번달에는 신장까지 나빠졌대요.술.담배 끊고 훈련때 두세시간씩운동을 하는데도 신경을 너무 써서 그런지 52 ㎏으로 줄었어요.” -일본 대표감독으로 간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가긴 어딜 가요.지금도 일본육련 관계자들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비추기는 합디다.이 나이에 욕 먹어가면서 돈을 더 벌면 얼마나 더 벌고 또 어디다 씁니까.시드니올림픽 우승은 괜히 떠든 게 아닙니다.” -일본에서 정감독이 개발한 식사요법에 많은관심을 보이던데요.
“실은 일본에서 힌트를 얻은 거예요.80년초 일본에서 열리는마라톤대회에서 우리선수들이 툭하면 30㎞쯤에서 배가 아프다고 주저앉아요.나중에 우리선수들이 고기를 포식하는 걸 보고 일본감독이.저렇게 먹고 어떻게 마라톤을 하느냐'고 해 식사요법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요점만 공개하면 평소에는 육류를 충분히 섭취하고 경기 1주일전부터 1,2차로 나눠 1차때는 야채.전분.
간 안한 생고기,2차때는 찰밥 한덩이와 야채만으로 버티게 합니다.30㎞가 되면 대개 체내에 축적된 에너지가 고갈되고 지방을연소시켜 에너지를 얻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탄수화물을 미리 비축하는 것이지요.” -일반인도 그렇게 하면 잘 뛸 수 있습니까. “어림없어요.배고픈 것은 둘째치고 빈혈을 못 견딜 겁니다.
그 전 과정도 중요하거든요.마라톤을 함부로 시켜서는 안됩니다.
특히 20세이하 어린 선수들을 풀코스에 도전시키는 건 위험합니다.유럽에선 20세이전 마라톤금지가 명문화돼 있는 곳 도 있어요.” -재목은 어떻게 고릅니까.유망한 꿈나무는 꼽아두셨습니까. “우선 체격이 단단하면서도 매끈해야 돼요.근육형은 보기만 좋지 유연성이 없어 쥐 나기 딱 좋아요.발목.허리가 가늘어야 유연성과 충격흡수력이 좋고요.같은 키라도 목이 짧고 두툼하면 파워가 좋고.물론 근성도 있어야 되고요.점찍어둔 재목 이야 있지만 얘기 안합니다.전에 한번 입벙긋했다가 그쪽에서.장사'하려고 나오는 통에 돈만 올라가고 선수도 빼앗기고 말이죠….” -내년 계획은 세웠습니까.
“이달 30일께부터 한달동안 시드니에서 훈련할 예정인데 효과가 좋으면 연장할 거예요.대회출전은 결정된게 없지만 이봉주의 경우.기록도전'이 첫째요건입니다.1차로 2시간7분대에 진입하고2차로 세계기록(2시간6분50초)에 도전할 생각입 니다.로테르담이나 보스턴마라톤등이 후보가 되겠지요.그러나 무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국마라톤의 장래를 위해 한 말씀 하신다면.
“저변확대가 급선무지요.선수 몇십명 갖고 올림픽에서 금 나와라,은 나와라 하는게 웃기는 얘기예요.지금까지 통한게 용하지요.훈련장소도 큰 문젭니다.마땅한 훈련장 하나 없으니.서울이나 근교에서는 교통사고 위험때문에 도로훈련을 못해 김천 으로 내려가서 하는데 가끔 과속차량이 지나가면 아찔합니다.크로스컨트리 훈련도 골프장이 쉬는 월요일마다 목천(천안인근) 우정힐스골프장으로 옮겨 실시합니다.일본에는 20~30㎞ 도로훈련 전용코스만여러개 있어요.가끔 일본이나 중국 마라 톤팀이 전지훈련 온다고그러면 훈련장 하나 없는게 들통날까봐 이리저리 둘러대며 거절하느라 애를 먹습니다.힘도 들거니와 해봐야 스타 몇명 빼놓고는 생계유지도 어려운 실정에서는 한국마라톤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할수 없습니다.” -은퇴시기나 은퇴후 계획은 세워두셨습니까.
“한국마라톤이 나를 필요로 하면 언제까지든 해야죠.적어도 시드니올림픽 우승까지는 꼭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습니다.그 다음은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나름의 지도방법을 묶어 기록으로 남겨뒀으면 합니다.” ▶35년 7월15일 경북김천 출생 ▶증산초등.시온중.시온고에서 단거리 선수로 활약.군복무중 춘천대 법학과(야간)졸업 ▶53년 육군입대,휴전후 육군3보충대에서 육상재개 ▶육군대표 코치(63년) ▶육군대표 감독(72년) ▶육군3사관학교 감독(78년) ▶상무 초대감독(80년) ▶상사로 정년퇴임(83년) ▶88꿈나무 감독(82~84년)▶코오롱 창단감독(87년.과장,현재 이사) ▶육상연맹 마라톤강화위원장(94년.현재) ▶64년 여우분(61)씨와 결혼,1남3녀 정태수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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