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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정부의主役들>3.앤서니 레이크 안보보좌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5공화국의 첫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안정성장의 기틀을 닦았던 고(故)김재익(金在益)수석이 아직 살아있다면 아마도 차기 미중앙정보국(CIA)국장으로 지명된 앤서니 레이크(57)현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을 매우 흥미있게 지켜보았음직하다.두사 람 사이에는흡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레이크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조용조용히,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거의 다 관철시켜온 백악관의.인사이더'다.백악관 비서실장 레온 파네타는“그의 의견이 뒤집히거나 바뀌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학자풍의 외면과 달리 실제는 매우 관료적인.인파이터'라는 것이다.
수줍어하는 듯한 매너에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가 흥분하기잘하는 클린턴과 나누는.보디 랭귀지'에 다른 참모들은 종종 깜짝 놀라곤 했다고 한다.항상 의견충돌이 있게 마련인 국무부.국방부.CIA의 중간에 서서 의견조정을 해내는 데 도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그러고도 그는 거의 밖으로 드러나지않는다. TV에도 잘 등장하지 않아,심지어 그의 보좌관 취임 초기엔 뉴욕 타임스가 클린턴과 함께 서있는 그의 사진을 실으면서 이름과 직책을 밝히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정도다.또 일종의 완벽주의자인 것이,예컨대 회의 도중 문법에 어긋난 발언이나오면 반드시 수정해 기록에 남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이상과 현실을 다 같이 끌어안는.양면성'을 그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클린턴의 1급 참모로 곧 강단에 설 예정인 조지 스테파노풀루스는 그를“도덕군자가 아니면서도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실제 로 그는 .
군사력의 뒷받침이 없는 외교'는 공허하다는 원칙에 철저한 인물이다. 또 암허스트대등의 재직(81~92년)때 리버럴한 학자 이미지와는 달리 이라크.테러리즘.마약등의 문제에 대해 CIA가비밀공작을 벌이는데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입도 매우 무겁다고 정평이 나있다.유엔의 대(對)이란 무기금수(禁輸)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보스니아에 대한 무기수출을 눈감아주기로 한 백악관의 결정을 당시 CIA국장 제임스 울시에게 끝내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면모들이 CIA국장으로서 적임자라는 평을 낳게 하고 있다.스스로를.자유세계를 위한 안보보좌관'이라고 평하는 그는 93년 한 연설에서“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여전히 남아있는 안보위협 요소는 테러리즘.대량살상무기 확산. 인종 갈등.
지구환경 파괴”라고 밝힌바 있다.
그를 클린턴에게 소개한 사람은 이번에 그의 후임으로 임명된 샌디 버거다.카터 행정부 시절 레이크와 버거는 국무부 정책기획국 국장.부국장으로 함께 일한 인연이 있었고,클린턴과 72년부터 교분을 맺어온 버거는 일찌감치 클린턴 진영에 합류해 있었다.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이 백악관 안보보좌관일 때 그의 특별보좌관으로 있었는데,72년 키신저가 그의 전화에 도청을 지시한 것을 알고는 키신저를 고소해 굴복시키기도 했다.
격무를 계속하느라 친구들도 멀어지고 부인과도 이혼했으며 건강도 그리 좋지 않다.야구광인 동시에 모처럼 틈이 나면 절친한 친구 워싱턴 레드스킨스팀 코치 노브 터너와 함께 풋볼연습장엘 들르곤 한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앤서니 레이크 약력*** ▶39년:뉴욕 출생 ▶61년:하버드대 졸업 ▶74년:프린스턴대 국제관계학 박사 ▶62~80년:62년 국무부에 들어가 베트남 주재 영사,국가계획국장 역임 ▶81~92년:암허스트대와 마운트 홀리요크대 국제관계학 교수 ▶93~96년: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신상 ▶가족:독신.이혼한 전 부인과 사이에 3명의 자녀 ▶성향:남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학구적 성격의 소유자.온건한 외면에도 불구하고 업무처리에는 매우 치밀하며 관료적이라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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