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 국제회의 “히든 챔피언은 위기에서 수익을 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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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정신 되살려 위기 극복” … 정부·학계·기업인 600명 참석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3일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나 정주영 현대 회장 같은 창업 세대 기업인들은 기업의 성공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한국 경제가 경이로운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기반”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1회 기업가 정신 국제콘퍼런스’에서다. 그는 윤석만 포스코 사장 대독으로 이 같은 내용의 ‘경제원로의 제언’을 전했다. ‘새로운 성장엔진으로서의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는 경제 5단체가 공동주최하고 지식경제부가 후원했다.

박 명예회장은 “정부와 국민이 기업가 정신이 만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서서히 효과를 내고는 있지만 무르익기까지는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의 금융위기 사태에 대해 “이런 중대한 고비일수록 우리 경제에는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충만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축사를 통해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들의 기업가 정신 잠재력이 사회로 표출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범 무역협회장도 개회사에서 “최근 대외적인 여건 변화로 수출 둔화가 예상된다”며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기업가 정신을 다시 발휘해 또 한번 ‘한강의 기적’을 이뤄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콘퍼런스에는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설립자 지미 웨일스와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 아마르 바히데 컬럼비아대 교수가 연사로 나섰다. 콘퍼런스는 경제 5단체가 지정한 ‘기업가 정신 주간(10월 30일~11월 9일)’ 행사 중 하나로 열렸다. 정부·학계 인사와 기업인 600여 명이 참석했다.


헤르만 지몬
“수출 대국 독일 저력은 1200개 강소기업”

YG-1, HJC, 모텍스, CAP, 오로라월드, 유닉스전자….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히든 챔피언’으로 지목한 한국의 강소기업이다.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그는 이날 특별강연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시장을 이끄는 숨겨진 기업들을 소개했다. 그의 저서 『히든 챔피언』은 세계적 베스트 셀러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이 세계 수출국 1위를 유지하는 건 1200개에 달하는 히든 챔피언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중소기업이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어 히든 챔피언을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위기로 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더 영향이 크지 않겠나.

“히든 챔피언은 오히려 위기에서 수익을 얻는다. 시장이 재조정되는 건 호황이 아닌 위기 때다. 조사 에 따르면 히든 챔피언 중 30%는 과거에 심각한 위기에서 살아남은 적이 있다.”

-한국엔 좋은 기술을 갖고도 성장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도 많다.

“ 역량이 있어도 세계시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세계화가 중요하다. 한국의 히든 챔피언들을 보면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세계시장으로 나아갈 땐 대기업을 통해 자신의 상품을 판매한다. 역량뿐 아니라 세계 네트워크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한국 정부가 히든 챔피언을 키우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인가.

“정부와 사회가 새로운 문화 창조에 앞장서야 한다. 어제 한국의 대학생들을 만났는데 ‘졸업 뒤에 어떤 직업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 현대나 삼성과 같은 대기업 취업을 원 하더라. 이 같은 문화를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창업자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독일에 특히 히든 챔피언이 많은 비결이 있다면.

“대학뿐 아니라 직업학교에서도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독일엔 ‘듀얼시스템’이라는 교육제도가 있어 일주일 중 사흘은 기업에서 훈련하고 이틀은 직업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기업엔 연구개발 인력뿐 아니라 역량 있는 기술자도 필요하다.”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독일 경영학자인 헤르만 지몬이 선정한 초일류 중소기업. 연 매출이 40억 달러를 넘지 못했지만 세계시장에서 해당 분야 3위 이내,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를 차지한 기업 중 평균수익률, 직원 수, 시장지배력 등을 따져서 엄선했다. 대개 경영자들이 나서길 꺼려 업체명은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숨은 진주’란 소리를 듣는다.


지미 웨일스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경기둔화 때”

위키피디아 재단은 22명이 일하는 작은 비영리재단이다. 하지만 이곳이 운영하는 ‘위키피디아’는 전 세계 방문자 수 세계 5위의 웹사이트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백과사전이다. ‘자유로운 지식과 자유로운 문화(Free Knowledge, Free Culture)’라는 아이디어가 성장의 기반이었다. 위키피디아의 설립자이자 위키피디아 재단 이사장인 지미 웨일스는 이날 기조강연에서 ‘지식의 자유로운 사용’이라는 위키피디아의 기본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포브스 선정 ‘웹 명사 12위’,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0인’의 타이틀도 갖고 있다.

-인터넷 이 문화 콘텐트 산업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인터넷은 대중문화와 예술,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위키피디아인은 창의를 사랑하고 남과 공유를 즐기는 사람들일 뿐이다. 아직 영화나 박물관을 위한 공간은 남아 있다. 이와 다른 제3의 민중문화, 공유문화가 부상한 것이다.”

- 사이버 테러 같은 부작용도 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모두 똑같이 책임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하향식 규제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

-금융위기로 경제가 위축돼 있는 지금, 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가.

“경기가 둔화될 때가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위키피디아도 닷컴 붕괴 뒤 설립됐다. 당시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혁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웹 2.0 기업도 거품인 것은 아닌지.

“많은 웹 2.0 기업은 이미 수익성을 내거나 내기 시작하고 있다. 과거엔 말도 안 되는 콘텐트의 사이트가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누려왔다. 하지만 웹 2.0 기업들은 콘텐트 면에서 다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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