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김승현‘있고 없고’에 오리온스‘뜨고 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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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프로농구 뚜껑이 열리자 오리온스가 강호 KCC와 모비스를 잡고 공동 선두로 치고 나갔다. 초반이지만 의외의 성적이다. 지난 시즌 11연패와 5연패를 두 차례씩 당하는 등 동네북이었던 오리온스다. 지난해 시즌과의 차이는 김승현(30·1m78㎝·사진)이다. 허리를 다쳐 지난해 벤치에 앉아 있었던 김승현은 올해 부상을 털고 나와 현란한 지휘로 팀을 이끌고 있다. 두 경기에서 무려 28개의 어시스트를 뽑아냈다. 2위 표명일(동부·18개), 3위 주희정(KT&G·17개)에 크게 앞서는 성적이다.

김승현이 살아나자 팀원들도 힘을 내고 있다.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병철(35)은 모비스전에서 무려 29점을 쓸어 담았다. 특히 외국인 선수 가넷 톰슨(2m5㎝)과 김승현의 콤비 플레이가 압권이다. 손발을 맞춘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호흡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간다. 톰슨은 두 경기에서 57점을 몰아 넣었다.

김태훈 오리온스 홍보팀장은 “승현이의 패스를 받아 속공을 하는 톰슨의 모습을 보면 프로농구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로 불리는 마커스 힉스가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시즌 전 김상식 감독은 어떤 외국인 선수를 뽑을지를 고민하다 가넷 톰슨과 크리스 다니엘스(2m7㎝)를 택했다. 두 선수 모두 2m가 넘는 대신 기술이 그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도박일 수도 있었다. 만약 김승현이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다면 팀은 엉망진창이 될 게 뻔했다. 김승현이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 두 선수 중 한 명은 키가 작아도 드리블과 어시스트가 가능한 선수로 뽑는 것이 안전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김승현의 부상 회복을 믿었고 도박은 적중했다.

김상식 감독은 “승현이가 허리 부상에서 해방됐고 키 큰 선수 둘을 뽑아 팀의 강점이던 스피드에 높이까지 더했다. 어느 팀과 만나도 해볼 만하다”며 하회탈 같은 미소를 지었다. 허리 디스크는 재발 가능성도 있다. 오리온스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김승현은 몸 걱정을 끔찍이 해 팀으로선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김승현은 지난 시즌까진 잘하지 않던 발목 보호 테이핑을 연습 때도 꼭 했다. 시즌이 시작됐지만 부상 방지를 위해 재활 트레이닝도 틈틈이 받고 있다. 프로농구 최고 가드인 그의 허리가 건강하면 오리온스는 욕심을 내볼 만하다. 김승현도 그렇게 느낀다. “우승을 차지했던 2001~2002 시즌 이후 가장 느낌이 좋다. 플레이오프에만 가면 누가 우승할지 아무도 모른다.”

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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