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북한 탈출 의미.전망-대규모 脫北 본격화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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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주민 金경호씨 일가의 집단 탈북사건은 그 규모나 탈출 경위등에서 기존의 탈북사례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선 17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북한을 탈출할 때까지 북한당국의 감시망이 미치지 못했다.특히 이들을 감시해야할 사회안전부요원이 거꾸로 안내역까지 맡았다.
게다가 金씨의 장인인 재미교포 崔영도씨가 중국에 드나들면서 이들의 탈출을 이끌었다.
휴전 후 이런 식으로 탈출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라는게 정보당국의 설명이다.이를 뒤집어 보면 북한당국의 대주민 통제능력이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얘기로 이어진다.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그동안 논의차원에 머물던.대규모 집단탈출'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하고 있다.
통일원 자료에 따르면 70년대 25명,80년대 63명이던 탈북자 수는 90년대 들어 매년 10여명 수준으로 확대됐다.
그러다 김일성(金日成)이 사망한 94년이후에는 매년 40~50명 수준으로 대폭 늘어났다.
.식량난→자원공급 차별화→지역독립→중앙정부 억압→저항→균열→권력 재편'이라는 7단계 붕괴과정중 현재 2~3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주한미군의 보 고서가 한 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탈북추세를 갖고 북한 정권의 붕괴를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김정일(金正日) 정권의 기반은 주민동의가 아니라 핵심 당.정.군 간부에있고,이들의 동요 조짐은 아직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金씨 경우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듯이 북한주민들을 목숨을 건 .엑소더스'의 길로 내모는 요인은 극심한 식량난과 부정부패다.
북한의 식량난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점차 악화일로를 걷는 양상이다.최근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고위관 리를 만났던한 재일동포는“평양의 당정간부들에 대한 쌀과 잡곡 배급 비율조차 종전의 8대2에서 5대5로 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지난 5월 귀순한 과학자 정갑렬씨는“대부분의 열차는 식량을 구하려는 주민들로 화장실 안까지 만원”이라면서“여기 끼여있다는 처지에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이같은 식량난 이외에도 북한주민을 환멸로 모는 요인은 한 두개가 아니다.그중 가장 큰 암적 요인은 부정부패다.부패현상은 허가권을 쥐고있는 당.정간부와 실무자들은 물론 학계.군부등 사회전반에 걸쳐 확대일로에 있다.
국경세관 통과.진급.식량조달에 이르기까지 돈,특히 달러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이 없는게 북한이라고 귀순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영국에서 외환딜러로 일하다 귀순한 최세웅(35)씨는 1백만달러를 당의 요인에게 뇌물로 바치고 북에 있던 딸을 영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귀순 조종사 이철수 대위도“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뇌물과 아첨이 없으면 인정을 못받는 사회”라고 폭로했다.
이번에 金씨일가가 탈출에 성공한 것도 장인이 뿌린 달러가 한껏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냐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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