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막자’ 한국도 발등의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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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코스피지수 144.05포인트(14.9%) 상승,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0.08%포인트 하락. 10월 30일 3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이 체결된 이후 이틀간의 금융시장 성적표다. 시장을 짓눌렀던 공포감은 한결 가신 셈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병이 완전히 나은 건 아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통화 스와프를 포함한 금융시장 안정 대책은 한국 경제에 대한 응급조치”라며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조심스러운 전망은 이미 실물경제의 침체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31일엔 중견 건설업체 신성건설이 1차 부도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이에 앞서 경북 영주에서 대규모 리조트 조성 사업을 벌이던 ㈜이앤씨건설이 부도 처리됐다. 철강구조물 분야의 선두권 업체인 한신스틸콘도 어음을 막지 못해 납품업체들의 어음 피해만 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 달 21일 철강 수입업체인 삼정제강은 최종 부도를 냈고, 22일엔 삼보철강의 당좌거래가 정지됐다. C&그룹이 위태롭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은행이 조사한 제조업의 10월 자금사정 실사지수(BSI)는 기준인 100을 크게 밑도는 70에 그쳤다. 이는 BSI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최저치다. 황창중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부도로 기업이 쓰러질 때마다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기업들의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는 데다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우리의 주요 수출국에서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상품수지는 이미 8~9월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3분기에 27.7%였던 수출증가율이 4분기엔 14.2%로 떨어지고, 내년엔 8.3%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 나쁜 전망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112억 달러 적자로 예상되는 경상수지가 2010년 이후 3년 동안은 연간 6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시장에서도 아직은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주식과 채권시장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지만 환율은 여전히 불안하다. 심리적 불안은 많이 풀렸지만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금리 상승을 촉발시켰던 은행채의 과잉 공급도 불씨를 안고 있다. 한국은행이 남아도는 은행채를 사주기로 했지만 11~12월 은행이 갚아야 할 은행채는 16조8000억원으로 월평균 만기도래액(7조7000억원)보다 10%가량 많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은행이 가계와 기업에 돈을 윤택하게 공급할 리 만무하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한 중소기업이 정부 대책에 따라 은행에 지원을 신청하려 하자 부동산 담보를 내고, 매달 500만원씩 적금을 부으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중앙회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각종 지원 대책이 발표됐지만 그 효과를 실감하고 있는 업체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이자만 내는 거치 기간이 끝나고 대출원금의 분할 상환이 시작되는 주택담보대출이 올해 17조4000억원에서 내년에 33조5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나는 것도 경제엔 부담이다. 이자와 함께 원금까지 갚게 되면 그만큼 소비 여력이 줄고, 이로 인해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경기대책 하루 앞당겨 오늘 발표=정부는 예정보다 하루 앞당긴 3일 대대적인 경기 부양 계획을 담은 ‘위기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정부 관계자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종합대책 최종 보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대책이 확정된 만큼 하루라도 빨리 발표하는 게 좋겠다’고 해 발표를 앞당겼다”고 말했다. 지난주 종합대책 초안을 보고받은 이 대통령은 “대책의 강도가 충분하지 않으니 더욱 과감하게 보완할 것”을 지시해 정부 발표가 이번 주로 연기됐었다.

김준현·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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