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유럽 내년 마이너스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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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연합(EU)·일본 경제가 내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린이푸(사진) 세계은행(WB) 선임 부총재는 지난달 3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금융위기가 개발도상국에 미치는 영향’ 세미나에서 이같이 내다봤다. 그는 “8월에 미국·EU·일본의 내년 경제성장률을 0 또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으나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초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성장률(미국 0.1%, EU 0.6%, 일본 0.5%)보다 더 비관적인 것이다. 린 부총재는 “선진국의 주택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재산이 줄어 소비와 투자가 함께 감소할 것”이라며 “신용 경색까지 겹쳐 성장이 급격히 둔화할 수 있다”고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한 근거를 설명했다.

그는 선진국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개도국의 급격한 수출 감소와 투자 자금 확보난, 자본 조달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동안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갔던 중국도 내년에 8~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개도국들은 금융부문으로 위기가 전파되는 것을 막고, 통화량을 늘려 비교우위에 있는 부문의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린 부총재는 지적했다. 특히 민간의 성장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 지원을 통한 사회간접자본(SOC)의 확충에도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린 부총재는 또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글로벌 금융 공조 체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지는 과정에서 세계 금융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혔는지를 보여줬으니, 이에 대응할 국제공조 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린 부총재는 “G7(서방 선진 7개국) 위주가 아니라 개도국까지 포함하는 G20(G7 + 한국·중국·러시아 등) 중심으로 새 체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 세계의 경기 침체와 관련해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1일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의 상황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1990년대 10년간 불황을 겪었던 일본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3분기 소비지출이 17년 만의 최대폭으로 하락하는 등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 “통화가치가 급락한 한국·인도는 수입물가가 올라 소비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아시아 경기 침체의 정도는 90년대 말처럼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기간은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미국과 유럽 경제가 큰 고통을 겪고 있어 이들 지역으로의 수출 확대를 통한 경제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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