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끄떡없다던 리츠의 굴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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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26면

시장에서 자산을 팔고 싶을 때 얼마나 쉽게 팔 수 있는지 여부로 유동성(Liquidity)을 따진다. 유동성이 풍부한 투자자산의 대명사로 주식이 꼽힌다. 반대는 부동산이다. 이런 부동산의 단점을 보완한 게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다. 리츠는 투자자의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회사로 주식시장에 상장되기 때문에 투자자는 쉽게 현금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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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투자자들이 현금화를 못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리츠가 있다. 2003년 말 설정돼 국내 부동산에 투자해 온 A리츠는 올 12월 청산을 앞두고 있었다. 청산이라는 것은 그동안 투자한 부동산을 정리해 투자자들에게 열매를 나누어 주는 것을 말한다. A리츠는 투자한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경기불황 속에서도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해 왔었다. 그러나 지난주 주식시장에 상장된 A리츠의 가격은 1주일 만에 반토막이 났다. 1만원대이던 A리츠 주가가 6000원대로 주저앉았다. 게다가 청산이 얼마 안 남아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작을 것이라 안심했던 투자자들에겐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정은 이랬다. A리츠는 12월 펀드 청산을 앞두고 보유 중인 국내 대형 오피스 건물을 매각하기로 계약을 했었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최종 협상이 결렬돼 계약이 무산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덩치가 큰 부동산이다 보니 다시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 2001~2004년 설정된 리츠의 만기가 올해 말 대거 돌아오면서 대형 오피스 매물이 쏟아져 단기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A리츠는 존립기간을 연장하기로 공시를 했다. 만기에 청산을 기대하고 A리츠를 보유했던 투자자들은 주가 급락으로 주식시장에서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과거 리츠는 주식형펀드와 채권형펀드의 중간이라 불릴 만큼 안정성이 높은 투자상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리츠는 부동산이라는 자산을 기반으로 하기에 예전엔 경기방어주로 여겨졌지만, 지금처럼 부동산과 금융이 같이 떨어지는 시장에선 투자 리스크가 커졌다. 아울러 주식시장에 상장해 유동성을 높였다고는 하지만 매수자가 많지 않다면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고 매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에서 안정성이 높다고 인식되던 투자상품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안테나를 더욱 치켜세우고 시장 돌아가는 판을 주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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