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제3共 헌법 제정 미국교수 중요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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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금도 개헌문제가 꺼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가운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밝혀졌다.5.16 군부세력이 주도한 제3공화국 헌법 제정과정에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였던 하버드대 루퍼트 에머슨 교수(1899~1979)가 깊이 관여했다는것이다. 당시 에머슨 교수는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내각은 의회가 아닌 대통령에게 직접 책임을 지는 순수 대통령제를 3공 헌법의 기본골격으로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또5.16 군정(軍政)이 하루빨리 민간정부로 대체되도록 막후에서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내용은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에머슨 문서'(하버드대소장,총 2백69페이지)에서 밝혀졌다.이 문서는 에머슨 교수가헌법자문역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부터 3공이 탄생될 때까지 한국의 주요 인사들과 주고 받은 서신,헌법 초안에 대한 논평,한국의 민주발전을 위해 제안한 비망록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머슨 교수는 서신을 통한 자문 외에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이주일(李周一)헌법심의위원장 초청으로 62년 10월6일부터 2주동안 서울에 머무르며 새 헌법 제정작업을 도왔다.
에머슨 교수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든 헌법 초안에 대한 논평에서“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정부가 들어서도록 새 헌법에명시해야만 민간정부로의 이양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또“내각의 수반과 각료들은 대통령이 임명 하고 대통령에대해 직접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며 권력구조를 순수 대통령중심제로 할 것을 거듭 제안했다.
그 무렵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혼합해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단호히 반대한 것이다.
이어 에머슨은“강력한 정부라 하더라도 헌법의 틀안에서 기능하고 자유롭게 선출된 의회에 책임을 지며 독립된 사법부의 견제를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미 국무부 동아시아국 한국책임자 크리스토퍼 노드는 62년 11월6일 에머슨에게 보낸 서한에서“1백21개 항목과 부칙으로 된 한국의 헌법 초안은 당신이 힘주어 주장한 강력한 대통령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알려줬다.
에머슨 교수는 또“새 헌법에 따라 수립될 민간정부가 민주적 정부라는 사실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서는 군사정부가 하루빨리 민간정치인에 대한 정치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에머슨은 7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43년동안 하버드대 교수로재직했다.신생국의 정치발전을 주로 연구한 그는 60년.제국에서민족으로'를 발표해 학계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한국의 신탁통치 결정과정에 도 깊이 관여한바 있다.

<이동현 현대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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