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환율 200원 하락 … 달러의 힘에 시장도 ‘신뢰’ 화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에 따라 30일 원화는 달러와 엔에 대해 일제히 강세로 돌아섰다. 원-달러 환율의 낙폭은 177원으로 1997년 12월 26일(338원) 이후 최고 기록이다. 원-엔 환율도 200.27원 떨어졌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그동안 환율이 급등락한 데엔 달러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다”며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은 이런 불안심리를 잠재울 수 있는 대형 호재”라고 평가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환율 하락세 굳히나=미국 이외에도 정부와 한은은 국제통화기금(IMF)·일본·중국과도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어 모두 390억 달러를 확보했다. 통화 스와프로 시장에 풀 수 있는 돈은 69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9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2397억 달러)의 29%에 해당한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시장을 안정시키기엔 충분한 액수”라고 말했다. 이 돈은 한국은행이 매주 화요일 실시하는 스와프 경쟁 입찰 방식으로 은행권에 직접 공급된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의 통화 스와프 협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는 별도로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200억 달러 이상을 외환 스와프시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달러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전반적인 외환 수급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는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또 수출입은행을 통해 은행들이 수출기업의 수출환을 사주는 데도 250억 달러가 배정돼 있다. 당장 현금으로 시장에 푸는 자금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실탄이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은행의 외채 지급보증액 1000억 달러도 큰 바람막이다.

권우현 우리은행 과장은 “외환거래량도 다시 늘고 있어 작은 거래금액에도 환율이 출렁이는 현상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며 “다만 해외발 악재가 반복될 수 있어 당분간은 등락이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경우 급등했던 원-엔 환율도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제적인 엔고 현상이 변수가 될 수는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면서 달러는 주요국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값이 원화에 대해 떨어지는 속도보다 엔화에 대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면 원-엔 환율의 하락세가 다소 주춤해질 수도 있다.

◆자금 사정에 숨통=지난달 15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보호 신청 이후 꽉 막혔던 국내 은행들의 외화자금 조달이 서서히 트이고 있다. 물론 조달 규모가 크지 않고 금리도 여전히 높다. 그러나 하루짜리 달러 차입에 의존하던 데 비하면 사정이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29일 2년 만기의 변동금리부 외화채권을 발행해 4500만 달러를 조달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보호 신청 이후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정부의 지급보증 없이 중장기 외화 조달에 성공한 것이다. 이에 앞서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은 1억5000만 달러, 농협은 1억 달러를 조달한 바 있다.

해외채권 발행을 통해 10억 달러를 조달하기로 했던 포스코도 해외 차입 여건이 크게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당장 어떤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며 “그러나 예정했던 채권을 발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투자자의 출자를 얻어내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롯데손해보험은 30일 392억원 규모의 자사주 9.9%를 일본의 아이오이손해보험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날엔 국민은행이 지분 2%를 일본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은행에 매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외화 조달이 급격히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동영 우리은행 자금부장은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를 계기로 외국 은행들의 국내 은행에 대한 불안감은 많이 사그라들 것”이라며 “그러나 갑자기 국제 금융시장 여건이 호전되길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임근일 신한은행 부부장도 “외화자금시장은 증시나 외환시장처럼 호재가 있다고 즉각 반영되지 않는다”며 “유동성 문제가 어느 정도 정상화하려면 올 연말은 넘겨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준현·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