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름의 역사] 63. 구름을 타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1984년 7월 골프장에서 포즈를 취한 엄영달(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천하에 기억력 좋기로는 원로 시인 황금찬씨를 따를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작가 신봉승의 기억력은 또 어떤가. 알고보니 황선생에게서 배웠단다. '엄영달'이라는 친구도 기억력이 뛰어났다. 서울대 예과 출신 중 막내둥이다. 이 친구는 뭐든지 1등하는 취미가 있고, 또 실제로 1등을 한다. 한국일보에서 연재소설을 또 한번 해보자고 할 때 나는 엄영달이 생각났다. 세상은 무섭기는 하지만 줄기차게 전진하고 있다. 차세대 주인공인 젊은이들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자극을 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서독 한국대사관의 영사까지 지낸 엄영달이 형무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실의에 차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연소로, 그것도 1등으로 외무부에 들어간 그가 아주과장을 할 때였다. 우리는 그를 가장 출세한 친구로 봤다. 그는 훌쩍 뛰어넘더니 일본에서 꽤 재미를 보다 서독의 한국대사관 영사로 부임했다. 만약 대통령도 시험봐서 뽑는다면 틀림없이 그가 당선할 것이라고 농을 할 때였다. 이 친구가 베른 바로 아래쪽에 있는 온천지대로 놀러 다니다 바덴바덴의 카지노에 들렀다. 룰렛게임을 해 돈을 꽤 땄다. 차츰 재미를 붙인 그는 베른의 고층빌딩을 가리키며 저것이 머잖아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다는 꿈을 갖게 됐다. 마침내 대사 부인과 함께 카지노에 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계속 잃었다. '딸 수 있다. 기회는 올 것이다'라는 희망으로 공금에 손을 댔다. 블랙잭 테이블에도 앉아 보았다. 그래도 안 되자 대사 부인에게 사정했다. 부인은 겁을 내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안 보이게, 안 보이게…"하며 게임을 계속했으나 끝내 도박의 여신은 그를 외면하고 말았다. 5.16 군사정부가 이 사실을 알고 그를 본국으로 끌고 와 형무소에 집어넣었다. 그를 풀어준 사람은 윤하정이었다. 나중은 모른다. '각자 엮어가는 인생이 인생이라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소년시절 할머니로에게서 아침 저녁으로 개소주 한 잔씩을 받아 마셨다. 나는 그 개소주를 '역발산기개세주(力拔山氣蓋世酒)'라고 이름붙였다. 한때 유행했다. 개 한 마리를 잡아 단지에 넣고 소주를 부어 백사장에 묻어두었다가 충분히 삭힌 뒤 한 잔씩 떠 먹인 것이다. 그것이 엄영달을 정력적으로 만든 것 같다.

'대야망'의 삽화는 이화여대 미대학장인 김인승 화백이 맡아 주었다. 훗날 내가 외국에서 만난 외교관들은 대부분 '대야망'을 읽었다고 했다. 1968년께 출판돼 많이 팔렸다. 김종필(JP)씨도 애독했단다. 서울신문 장태환 사장이 엄영달을 특채했다. 이때부터 명예를 회복한 그는 강원도 영월-정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것도 전국 최고 득점자로. 당뇨병이 고질이었다. 2년 전 LA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문을 부탁받았다. '인생의 멋과 맛을 찾아 열심히 달려가던 천하의 수재 엄영달, 여기 잠잔다'라고 써주었다.

한운사 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