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 해빙노린 화해 제스처-北,헌지커 석방 속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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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에 억류중인 에반 헌지커의 석방 결정은 북한이 일단 미국에 대해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 국무부는 25일 헌지커 석방이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헌지커 자체가 북한의 대미(對美) 협상카드였다는 점을고려하면 북한으로서는 헌지커를 충분히 이용한 셈이 됐다.
북한은 헌지커 문제가 발생한 지난 8월에만 해도 미국측에 헌지커의 신상 명세를 요청한 정도였다.
그러나 잠수함 사건후 지난달말 이루어진 북한 이형철 미주국장의 방북에 즈음해서“헌지커는 조사결과 간첩임이 드러났다”며 이문제를 카드화했다.
이후 이형철은 미측에 헌지커가 비록 간첩이지만 석방될 수 있다며 북.미 관계는 잠수함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의 명시적 사과를 요구했고 이같은 강공책이 제네바 핵합의와 4자회담 추진에 비중을 두는 미국입장과 마찰을 빚은게 사실이다.
결국 미국은 마닐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측에 자신의입장을 설득했고 북한으로서도.해빙'의 화답으로 헌지커 석방을 미국에 선물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양국은 앞으로 잠수한 사건에 대해.수락할 수 있는 조치'를 북한에 촉구하겠지만 북한이 고분고분 응할지는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북한이 엉뚱한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으며 북한에서 26일 헌지커를 데리고 나올 예정이던 빌 리처드슨 미하원의원 일행의 북한 체류 일정이 하루 더 연장된 것도 이같은맥락에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리처드슨 의원은 지난 6월 방북 당시에도 김정일로부터 선물을받기 위해 일정을 연기했다고 밝혔으나 대북지원 방안등을 둘러싸고 북한측 수뇌부와 입장 조율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헌지커 석방을 계기로 북한은 미국에 대해 미사일 협상이나 유해발굴협상 재개등 본격적인 북.미 해빙무드 조성에 주력할게 틀림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리처드슨 의원의 방북일정 연장이 이같은 문제에 대한 북한측과의 입장조율 탓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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