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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가는길>무등산 규봉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무등산 하면 광주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그러니 무등산의 규봉암(圭峰庵)도 광주에 있는 줄로 착각하기 일쑤다.길을 모르면 더 고생하는게 당연하다.나그네도 장불재 어귀에서 간단한 검문을거치고난후 광주쪽에서만 규봉암을 찾다가 산 정상 부근까지 오르고만 것이다.
길을 잃으면 마음이 급한 만큼 걸음은 더 빨라지게 마련이다.
어느새 해발 1천를 넘어서자 찬 구름자락이 몸을 휘감는다.마침평일인데다 통제구역 안이어서 등산객도 없다.뒤늦게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닫고 다시 내려와 화순쪽으로 난 등산 로를 따라가는데 이번에는 해발 1천17라고 쓰인 입석대(立石臺)에 도달하고만다. 그동안 사진에서만 보았던 절경의 입석대다.길을 헤매고 있기는 하지만 관람료를 내고 명품을 감상하듯 고생의 대가로 입석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잠시후 다시 장불재로 내려와 초설(初雪)이 덮인 것처럼 하얀 갈대밭에 서서 보니 비로소 규봉암을 알리는 등산안내판이 눈에 띈다.
장불재에서 규봉암까지는 1.8㎞.산이기 때문에 평지의 세배쯤되는 먼거리다.
화순군 쪽으로 난 산길을 이마에 땀이 밸 정도로 한참 내려가니 규봉암을 가리키는 빨간 화살표가 보이는 것이다.얼마나 반가웠던지 동행하는 후배가 화살표를 애인처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있다. 사실 장불재에서 규봉암으로 가는 산길처럼 아름다운 공간도 없을 것같다.그냥 길이 아니라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있고,바위와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암자에 다다르니 무등산의 파수꾼처럼 느껴지는 정인(正印)스님의 자랑이 흥미롭 다.
“무등산은 영산(靈山)입니다.어디에서나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곳에서 물이 나거든요.그런가 하면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다 갖춰진,말하자면 우주가 담겨 있는 산입니다.” 이어 1천3백년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규봉암의 역사까지 설명해준다.주위에는 삼존석(三尊石)과 십대(十臺)로 불리는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암자는 마치 범종이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그런 형국을 이른바 종괘형(鐘掛型)이라고 한 단다.그리고 암자 편액은 김생(金生)의 글씨로 전해오다 조선조 들어 암자가 폐사되면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현재의 관음전은 불사한지 얼마 안된법당이라 그런지 수줍은 새색시 같은 모습이다.
나그네를 만나 반가운 벗처럼 얘기를 해주다 스님은 예불 시간에 지각하고 만다.그래서 오늘은 관음전 부처님께 염불은 생략하고 삼배만 올리고 나와야겠다며 허허 웃는다.손님을 맞이하느라 늦었으니 부처님도 양해하실 것같다는 표정이다.조금 도 주눅들지않은 스님의 모습을 보니 무등산의 정기를 받은 화엄신장(華嚴神將)같다.무등산을 사랑하는 산사나이를 만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원효사 쪽에서 장불재를 거쳐 산행해야 하는데 2시간 정도걸린다. 글 :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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