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新택리지] 양양 낙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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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인접한 절 중 나라 안에 이름난 절이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다. '택리지'는 "해안은 강가나 시냇가와 같이 작은 돌과 기이한 바위가 언덕 위에 뒤섞여 늘어서서 푸른 물결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하다. 또한 해안은 온통 반짝이는 흰눈 같은 모래로 돼 있어 밟으면 사박사박 소리가 나는 것이 구슬 위를 걷는 것과도 같다"고 묘사한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때 당나라에서 화엄사상을 공부하고 돌아온 의상 스님이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지은 절이다.

낙산사의 낙산(落山)이라는 이름은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인도의 보타 낙가산에서 유래한 것인데 해수관음상과 해돋이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의상 스님과 원효 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낙산사의 관음상에는 승려 조신(調信)의 꿈에 얽힌 설화가 남아 있다.

조신은 서라벌의 세규사에 속해 있던 명주 지방 장원의 관리인이었다. 고을 태수인 김흔의 딸을 보고 사랑을 느낀 조신은 간절한 마음으로 영험이 있다고 소문난 낙산사의 관음보살에게 김흔의 딸과 부부의 연을 맺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다. 몇 년 동안 간절히 염원했지만 그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고 말았다. 조신은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은 관음보살을 원망하여 날이 저물도록 울다가 관음상 아래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사모했던 그 여인이 그가 잠든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저는 일찍부터 당신을 사모하였지만 부모의 명으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당신과 부부가 돼 살고자 합니다." 조신은 기뻐하며 여인을 데리고 고향에서 살림을 차렸다.

40여년을 함께 살며 5남매를 두었지만 가난한 살림은 펴지지 않았다. 10여년 동안을 유랑걸식하다 명주 해현령을 지나던 도중 굶주림에 지친 열다섯 살의 큰애가 죽어 길가에 묻었다.

우곡령에 도착해 초막을 짓고 살면서 그들 부부는 병이 든 채 늙어만 갔다. 열살 된 딸아이가 얻어오는 음식으로 연명하던 중에 설상가상으로 그 딸마저 개에게 물려 병석에 눕고 말았다.

부부가 함께 울며 지나간 40년 동안의 고통과 그들의 인연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부부가 각각 2명씩의 아이들을 데리고 헤어져 살자고 약속하였다. 헤어져 길을 떠나려고 할 때 조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꿈이었다.

아침이 되자 조신의 머리는 백발이 돼 있었다. 그는 속세에 대한 미련이 사라짐을 느꼈고, 인생에 대한 허무와 회한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지친 조신이 해현령에 가서 큰아이를 묻었던 곳을 파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돌미륵을 이웃에 있는 절에 봉안하고 정토사를 창건한 후 부지런히 불법에 정진하였다. 춘원 이광수는 이 설화를 '꿈'이라는 소설로 남겼고,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 마지막 자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서산에 해지기를 기다리느냐! 인생이 꿈이란 걸 알고 있느냐!"

신정일 문화유산 답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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