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25일부터 결승 3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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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올해는 유창혁(劉昌赫)9단의 해가 될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적어도 한국의 프로기사들과 관계자들은 모두그렇게 믿고 있다.
.한국킬러'로 이름높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은뚫기 힘든 방패를 가진듯 보였으나 베이징(北京)의 應씨배에선 劉9단이 의외로 쉽게 이겼다.그때 요다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스스로 허물어져 버렸고 이 순간 한국기사에게 24 승8패를 거둔요다의 신화도 무너졌다.
유창혁9단과 요다9단이 서울에서 다시 맞선다.무대는 96년도바둑계의 대미를 장식하는 제1회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선수권대회결승3번기.신라호텔에 마련된 특설대국장에서 오는 25일 첫판을두고 27일 2국,29일 3국을 둔다.우승상 금은 應씨배와 같은 40만달러다.
5번기로 치러진 應씨배의 스토리를 먼저 살펴보자.시안(西安)의 1,2국은 1대1.劉9단의 공격력과 요다의 방어능력은 막상막하였다.
베이징의 제3국은 白을 쥔 요다가 초반과 중반을 주도,양상은정반대로 나타났다.劉9단의 창은 공격기회를 잡지 못했고 요다의방패는 점점 빛이 났다.하나 이것은 외관에 불과했다.
요다는 승리가 다가올수록 점점 초조함을 드러냈고 劉9단은 갈수록 예리해졌다.종반에 강한 요다가 종반에 접어들어 연이어 실족했다. 그는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바둑이 끝났을 때 黑을 쥔 劉9단은 8집의 덤을 내고도 5집이란 큰 차로 이기고 있었다. 2대1로 앞선 제4국에서도 의외의 현상이 일어났다.공격의劉9단이 발빠른 실리바둑을 구사하고 나섰는데 이 전략은 사실 실패였다.
白은 엷고 黑은 두터워 서울의 검토실에서는 한때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하지만 요다는 이번에도 스스로 무너졌다.일본바둑계의 희망으로떠오른 그는 결정적인 고비에 이르자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자멸의 코스를 밟았다.이 대결을 지켜본 서울의 프로들은 “정신력에서 유창혁9단이 요다9단을 압도했다.그 것이 승부를 가름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應씨배와 삼성화재배는 바둑계 최대의 승부다.이같이 큰 승부에서 명국이 나온 예는 아직 없다.조훈현(曺薰鉉)9단과 중국의 녜웨이핑(섭衛平)9단이 맞붙은 1회 應씨배 결승전 최종국은 녜웨이핑9단의 허망한 착각으로 중반에 끝나버렸다.
서봉수(徐奉洙)9단과 일본의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9단이 맞붙은 제2회 應씨배 결승 최종국도 오타케의 착각이 대역전극을만들어냈다.소위 .심장싸움'에서 한국기사들은 언제나 이겼다.
이번 삼성화재배는 과연 어떻게 될까.
승부의 열쇠는 유창혁9단쪽보다 요다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요다9단이 평소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쌍방의 승산은 5대5라는게 프로들의 관측이다.
그러나 요다가 應씨배 때처럼 흔들린다면 劉9단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劉9단은 “삼성화재배에서도 應씨배처럼 욕심부리지 않고 편안히두어갈 생각이다.그보다 더 좋은 전법은 없는 것같다”고 말하고있다.대담하고 결단력이 뛰어난 劉9단은 큰 승부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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