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게임중독, 게임 이야기로 ‘마음’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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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집에서 게임 못하게 하면 PC방 가면 되고, 돈 없어서 PC방에도 못 가면 TV로 게임채널 보면 되고, TV 채널도 못 보게 되면 휴대폰 게임 하면 되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인터넷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해 어린이들이 CF 음악 ‘되고송’을 패러디해 만든 노래라고 한다. 전문가 조언에 따라 컴퓨터를 거실로 옮기고 정해진 시간에만 게임을 하기로 약속하지만 지켜지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이 기특하게도 주말에만 2시간씩 게임을 해요. 그런데 게임을 못하는 날엔 노트에 게임 캐릭터를 잔뜩 그려 놓고 게임을 만들어 놀더라고요. 벌써 노트 몇 권을 그렇게 썼는지 모르겠어요. 게임보다 덜 나쁠 것 같아 내버려뒀는데 괜찮을까요?”

얼마 전 부모가 휴대용 게임기를 사주지 않자 아이가 노트에 게임을 그려 놀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를 그냥 놔둬도 되느냐”는 질문에 필자는 놀이로 승화시켜 볼 것을 권했다. 지난해 중학생 조카아이가 유희왕 카드를 학교에 못 가져가자, 카드 그림을 직접 그려 가져 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정성이 대단했다.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게임이 너무 하고 싶어 궁여지책으로 생각했다는 말에 다행이라고 여겼다.

인터넷 게임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배려해 만든 놀이가 아니라 단지 돈벌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 구조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놀이를 만든다는 게 도리어 대단하게 느껴졌다. 공부만 착실하게 하고 건강한 놀이를 즐기면 좋겠지만, 어른들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무책임한 상황에서 스스로 찾아낸 대안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 교육을 할 때 아이들에게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게 한 적이 있다. 게임 캐릭터와 규칙을 정하고, 스스로 게임을 만들고 그리는 과정에서 스토리 구성하기, 그리기, 자기 생각 발표하기 등 수업시간에나 할 만한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평소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아이가 게임 이야기를 하니 눈빛이 빛나고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게임을 하며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게 했더니 폭력성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고 한다. 공부만 시키지 말고 왜 게임에 열광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것만으로 치유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필자 역시 솔빛이가 게임을 좋아해 걱정이 많았다. 게임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다 보니 게임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게임에 빠진 아이들과 게임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터 보자.

이남수 『솔빛엄마의 부모 내공 키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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