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에서는 정부 미숙한 대응에 초점 맞춘 보도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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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의 최대 위기’.

요즘 외신들이 한국 경제 뉴스를 다룰 때 접두어처럼 쓰는 말이다. 공공연히 1997년 외환위기와 연결 짓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로 국가 부도에 몰리는 국가들이 속출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도 외환위기를 빗대는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가 첫 희생양이 되자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9일 ‘한국은 아시아의 아이슬란드인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썼다. 물론 내용은 “그럴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신흥시장의 ‘부도 도미노’를 언급하면서 우크라이나·아이슬란드·파키스탄 등과 함께 한 묶음으로 한국을 엮는 사례가 늘고 있다.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거론한 곳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다. FT는 14일 거의 한 면을 할애해 ‘가라앉는 느낌’이란 제목의 한국 경제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앞서 6일 “한국은 아시아에서 금융위기의 감염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라고 지목했다.

여기에 WSJ는 23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새로운 긴급 지원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으며 그 대상에 한국이 포함돼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24일에는 뉴욕 타임스(NYT)가 “많은 한국인은 10년 전 외환위기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외신들은 한국 경제의 여건이 외환위기 당시와는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통적으로 위험 요소로 지적하는 것은 은행의 단기 외채와 외화난이다. 당장 은행들의 외채는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이지만 신용 경색이 장기화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의 미숙한 대응을 지적하는 보도도 늘고 있다. NYT는 “이달 초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인들에게 보유 달러를 원화로 바꾸라고 촉구하자 일부 시민이 달러를 들고 은행 앞에 줄을 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방식은 한국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인식을 외부에 심어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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